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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조광조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자였나. 왕도정치를 준비한 개혁자였나

오룡의 역사 타파(25)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였고, 나라를 내집처럼 근심하였네, 해가 아랫 세상을 굽어보니, 충정을 밝게 비추리." 수지구 상현동 양지바른 광교산 능선에 정암 조광조 묘소 입구에 있는 절명시 내용이다.

역사 교과서에 크게 기록되어 시험에도 곧잘 나오는 기묘사화, 1519년 음력 동짓달 중종실록을 기록한 사관은 조광조의 죽음에 대해서 긴 논평을 남겼다.

사신은 논한다. 전일에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고 하루에 세 번씩 뵈었으니 정이 부자처럼 아주 가까울 터인데, 하루 아침에 변이 일어나자 용서 없이 엄하게 다스렸고 이제 죽인 것도 임금의 결단에서 나왔다.

조금도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니, 전일 두텁게 총애하던 일에 비하면 마치 두 임금에게서 나온 일 같다.

한반중에 영문도 모른채 의금부에 끌려온 사헌부 대사헌 조광조는 자기변론도 못한채, 중종의 변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가 믿었던 중종도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도학군주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자신을 죽이려는 것은 훈구파들이라고 믿었다. 정작 중종은 조광조를 빨리 죽이라고 재촉하며 밀지를 내렸다.

1482년(성종13) 서울에서 태어난 조광조는 17세에 평안도 어천역에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인근에 유배중이던 김굉필을 만났다. 소학을 정통으로 공부한 그는 김종직의 학통을 잇는 사림의 주요인물로 성장했다. 33살 늦은 나이였던 1515년(중종10년)에 문과에 급제한 그는 중종의 신임을 얻어 3년만에 홍문관 부제학의 청요직에 등용됐다.

도학(道學)정치를 목표로 한 조광조는 우선 뜻을 같이 하는 정치세력을 규합한다. 학문적 소양과 개혁의지가 있는 젊은 인재들을 발탁하기 위한 특별 시험인 현량과(賢良科)를 실시한다. 추천제인 현량과를 통하여 신진인사를 대거, 과감하게 영입하여 정치권의 물갈이를 시도한 것이다. 그 결과 개혁 성향의 젊은 사림세력이 정계에 대거 진출했다.

조광조는 중종에게 도덕적으로 완벽할 것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나갔다. 왕과 신하가 국정을 논의하는 경연을 활성화하고, 성리학 이외의 사상을 차단하기 위하여, 도교행사를 주관하던 소격서를 폐지한다. 또한 사림들이 향촌을 주도할 수 있는 자치 규약인 향약을 실시하고, 소학을 보급시켜 유교질서의 확산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조광조의 위훈삭제 주장은 훈구파를 조직화시킨다. 위훈삭제란 중종반정에 대한 공으로 받은 훈작(勳爵) 중에 가짜로 받은 것을 색출하여, 이를 박탈하고, 이들에게 지급하여 준 관직•토지•노비 등을 몰수하는 것이었다.

비록 반정에 의하여 추대된 왕이었지만 왕권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중종의 정치적 결단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훈구파였던 홍경주와 남곤 등이 경빈박씨를 움직여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를 새겨서 중종이 이를 보고 조광조를 제거했다는 주장은 훗날의 사림세력이 확대 해석한 것이다.

훈구세력에 의한 조광조 축출이 아닌 중종이 기획하고 연출한 일정에 의해 진행된 것이다. 도학정치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을 중종에게 위훈삭제는 사림세력의 왕권도전과 능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현량과로 천거된 후배 사림들의 여론에 밀렸던 개혁 일정과 조급성은 조광조 그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경제•사회 개혁조차 물거품이 되게 만들었다. 이미 기득권 세력의 중심에 있는 중종의 마음을 읽지 못한 책임, 왕도정치와 도학정치론이 사림세력의 정치적 지위 확보에 다급했던 후배들을 단속하지 못한 책임은 조광조가 져야 할 몫이다.

오룡
(평생학습 교육연구소 소장, 오룡 아카데미 원장, 용인 여성회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