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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신부를 기억하라!

오룡의 역사 타파(27)

한국 최초의 신부를 기억하라! 김대건을 말하다.

역사교과서에 한줄로 정리된 인물 김대건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다. 그런데 김대건에 대해서는 가장 불명확한 것은 그의 출신 신분이다. 워낙 비밀스럽게 종교활동을 했기 때문일까. 25년의 짧은 생을 살았기 때문일까? 그의 집안이 양반이었는지 평민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가 추구한 것은 신분을 초월한 평등과 사랑을 구현하는 것이었으니…. 1821년(순조 21) 김대건은 김제준(이냐시오)과 고(高) 우르술라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의 집안이 살던 곳은 내포 지방 솔뫼로 지금의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이다. 그의 할아버지 김진후는 천주교를 믿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814년 사망했다.

김대건의 아버지 김제준은 1839년 서울 서소문에서 참수되었다. 할아버지 김진후의 아들 중 셋째 종한은 1816년에 참수되고, 종한의 딸은 1839년에 참수당하고, 이 딸의 사위는 1824년에 옥사했다.

또 작은할아버지인 선후의 손자 제교, 할아버지 김진후의 넷째아들 희연의 아들 제항은 1866년에 공주의 충청감영에서 처형되고, 김대건의 또 다른 숙부 제철의 아들 진식은 1867년 역시 공주에서 처형되고, 선식은 나중 1866년에 죽었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한 가문에 가해진 종교박해의 최대 피해 가족들이다.

집안이 천주교 집안으로 낙인찍히자 어머니 고씨는 김대건이 일곱 살 때 당시로서는 산간벽지인 용인시 처인구 묵리(묵4리 한덕골)로 몰래 숨어들었다. 이후 김대건 일가는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 골배마실로 이사하였고, 그때 은이성소에서 선교하며 후계자를 찾고 있던 모방 신부의 눈에 띄었다. 은이(隱里)는 숨어 있는 마을이란 의미다.

모방 신부는 열다섯 살이던 김대건에게 세례를 주고 신부로 기르기 위해 1836년 마카오로 보냈다. 1845년 8월 17일 상해의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1846년 김대건은 서울, 용인 등지를 다니며 선교활동을 하는 한편,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사 입국로를 탐색했다. 당시 조선에서 엄금했던 천주교 포교를 위해 선교사들이 육로로 입국하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페레올 주교의 부탁으로 서해 해로를 탐색하던 김대건은 1846년 6월(음력 5월) 연평도 인근에서 체포되어 해주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김대건은 다시 서울 포도청으로 이송되어 문초를 받았다. 9월 15일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고, 9월16일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으로 순교했다. 그 후 김대건의 시신은 은밀히 옮겨져 안성 미리내에 안장되었다.

10월 26일, 이민식(빈첸시오)을 비롯한 여러 교우들이 새남터에서 처형된 후 버려진 시신을 모래를 파헤쳐 찾아내었다. 이때 김대건이 어릴 때 물린 흉터가 손에 있어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시신을 홑이불에 싸서 근처에 임시 매장했다가 사태가 좀 진정된 후에 다시 미리내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와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사이에 시궁산 고개에 비석이 서있다. 비석엔 크게 “애덕고개”라 새겨 있고 아랫부분에 “생전에 사목활동 길, 순교 후 유해운구 길”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김대건 신부가 용인과 안성을 드나들며 포교활동을 하러 다니던 길을 새남터에서 순교한 후 주검이 되어 돌아온 길이다.

용인에서 나고 자란 인물들이 아니지만 정몽주와 조광조는 많은 홍보를 통해 용인을 대표하는 전국적인 인물이 되었다. 지난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된 김대건에 대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25년 짧은 삶을 불꽃처럼 살다간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의 15년 삶의 흔적이 너무도 선명히 남아있는 용인.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용인 너울길’에 이 성지 순례길이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오룡
(평생학습 교육연구소 소장, 오룡 아카데미 원장, 용인 여성회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