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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잠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41|돌의잠|오명선


돌의 잠


오명선


그리하여 햇살 한 번 쬐지 못하고 여름을 보냈다
긴 장마가 여름을 다 소비한 것

발이 그려놓은 무늬가 신발이 될 때까지
새를 앉힌 말뚝이 허공이 될 때까지, 바닥에 날개를 짓이기며

무르팍으로 키워온 숲이기에
저녁은 새의 둥지를 다 가져도 펴지지 않는 등이다

누가 저 등에 얹힌 단단한 잠을 깨울 것인가

긴 생각을 지우듯,
문득 돌은 잠행하는 침묵이 아니라
앞 장을 읽고 있을 때 이미 뒷장의 결말이 책장을 덮는, 한 권의 소설이라면

온 몸으로 울음을 토해낸 저녁은
깊은 어둠이거나, 설익은 열매일 것이다

새를 물고 가는 노을이 달빛을 완성하는 동안
열리지 않는 계절은 벽으로 기댈 수 있을 거라는
마지막은 아프지 않을 거라는, 살찐 짐승들의 동정을 돼지꼬리표로 묶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대답 없는 봄의 안부를 베고 누워
죽은 새의 깃털을 빗질하는 구름의 시간, 수천 년을

걸어온 발이
한 점 바람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람이 신발을 다 신을 때까지

돌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돌의 무게와 돌의 끈기와 돌의 인내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인간의 무게와 인간의 끈기와 인간의 인내가 얼마나 작고 어설픈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돌 앞에서, 어쩌면 인간은 반성문만 써야 할 것이다. 무심코 집어든 돌멩이 하나에도 수많은 시간이 뭉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그러니 돌멩이 하나를 던질 때도 분노로 던질 게 아니라 반성하는 마음으로 던져야 한다. 나를 집어던지는 심정으로 돌을 던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만지는 심정으로 돌을 만져야 한다. 인간의 시간은 돌 틈에도 스미질 못할 것이므로.
박후기 시인(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