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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과 총독부, 경무대와 청와대 - 최고의 권력자가 살고 있다

오룡의 역사 타파(37)

중앙 집권 국가를 완성한 삼국시대 이래로 수도 주변에는 산성·도성을 쌓고 마지막으로 궁성을 지었다.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한 산성과 도성에 비해 궁성은 의장용 이었다. 광화문 뒤로 경복궁의 근정전 지붕이 외부에서 보이도록 지은 의미는 왕의 궁궐을 백성들이 쳐다 볼 수 있도록 한 의미가 담겨있다. 뒤로 보이는 백악(북악산)능선에 맞춘 근정전의 위치로 볼 때 백성의 마음을 하늘에 전달해야 한다는 왕의 마음가짐을 표현하려 했다면 지나친 확대일까?

몰락한 왕조의 궁궐은 일본제국의 식민 지배의 도구로 전락하며 철저히 농락당한다. 광화문은 허물어지고 근정전 앞에는 철옹성 같은 조선총독부가 들어섰다. 총독부 뒤편에는 1939년 미나미 총독의 관저를 짓는다. 도둑처럼 찾아왔다는 해방은 미군과 소련군에 의해 분할되고, 남한에 들어 온 미군 사령관 하지는 총독 관저를 그대로 사용한다. 지배 권력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변했다는 것은 조선총독부에 일본기 대신 미국기로 교체된 것으로 알게 됐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출범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는 경무대로 불렸다. 정식 명칭이 <경무대 대통령 관저>로 12년 집권 기간 동안 철통보안(?)이 유지된 곳이다.

원래 경무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한 뒤의 일이다. ‘대’란 을밀대, 태종대처럼 높은 곳에 펼쳐진 평지란 뜻이다. 평지위에 지은 정자에도 같은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다.

언덕이나 비탈을 깎고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돌로 쌓은 곳을 축대라 하고, 병사들의 훈련을 살펴보기 위해 높은 곳에 만든 것이 사열대이다. 남한산성에 남아있는 수어장대가 대표적인 사열대이다.

높은 곳에다 지은 건물 이름 그대로 군림하려는 권력의 의미가 강했던지 1공화국의 이승만 정부가 정권 연장을 위한 다양한(?) 개헌을 강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평지보다 높은 곳에서 스스로 고립을 원했던 경무대가 국민과의 소통을 제대로 할 리가 없었다.‘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논리는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한 의병들에게도 통하지 않을 주장이다. 시대착오적인 권력자의 통치론이 12년 동안 계속된 것은 분단과 전쟁이라는 정치외적 상황 때문이었다.

1961년 4·19 혁명이후 윤보선은 국민의 원성을 받았던 경무대의 이름을 청와대로 바꾼다. 미국의 백악관을 흉내낸 듯한 이름은 우리식의 전통적인 건물명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이젠 익숙해 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익숙해 진 이름 보다 덜 익숙한 것들이 익숙해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경복궁의 광화문 앞에 넓은 광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던 공간이었다. 왕을 우러러 보는 것도, 대신들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도 궁궐 정문 앞에서 누구나 할 수 있었던 특권(?)이었다.

푸른 기와가 주는 밝은 느낌처럼 국민과의 만남을 즐거워하고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권력, 그 권력이 있는 청와대가 축대위에 있다고 높은 벽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 권력의 상징물인 총독부 건물이 철거된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청와대와 국민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잘 보이는 곳에서 꼼꼼하게 살펴보라.

오룡
(오룡 아카데미 원장, 용인 여성회관,강남대 평생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