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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145|살아남은 자의 기쁨 |박상천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45


살아남은 자의 기쁨


박상천


한 영혼이 먼 길을 떠났다.

까만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방명록에 사인을 하고
봉투를 내밀고
영전에 꽃을 바치고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유족들을 위로하고

영정을 뒤로 하고 나오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웃으며 반갑게 악수를 하고
함께 모여 담배를 피우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명함을 나누고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먼저 간 그에 대한 추억을 안주 삼아
술잔을 주고받고
사업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혀를 차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지만

아, 먼저 간 그가 마련해준
이 기쁨의 자리,
기쁨의 자리.

여간해서는 사촌도 만나기 힘든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는. 사촌을 넘어, 5촌 당숙과 6촌 그리고 사돈의 팔촌은 모두 옛말이 되어버렸다. 형제, 부모자식 간에도 일 년에 두세 번 만나기 어려운 세상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다지도 멀어지게 만든 것일까.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우리를 몰고 가는 것은 누구인가. 가족마저 포기하면서까지 죽도록 일을 해야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정치와 가족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스펙이나 쌓으며 개미처럼 있는 힘 다해 일하다 죽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누가 가르치고 있는가. 장례식장에서 영정으로나 웃으며 만날 것이라면, 왜, 우리는 그토록 살기 위해 밤낮 없이 버둥거려야만 하는 것인가.
박후기 시인(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