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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었던 노비는 갑을관계에 의한 현대판 비정규직이다

오룡의 역사 타파(41)

삼국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시대에도 노비는 단지 말하는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 초기의 성군이라는 세종과 성종, 후기의 태평치세라는 영·정조 대에도 노비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귀족과 양반은 오로지 글공부나 하고 국가백년지대계 운운하는 동안 말하는 짐승 들은 노동에 종사하며 주인의 필요에 따라 물건처럼 팔렸다. 양반집이면 누구나 노비를 거느렸고, 상속할 때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1398년 7월6일 태조에게 올린 형조의 보고를 보면 “무릇 노비의 값은 비싸봐야 오승포 150필에 지나지 않는데 말 값은 4,5백 필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축을 중히 여기고 사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므로 도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원컨대, 지금부터는 무릇 노비의 값을 남녀를 논할 것 없이 나이 15세에서 40살까지는 4백필로 하고 14살 이하와 41살 이상인 자는 3백필로 하여 매매를 정해야 할 것입니다.”

전쟁 때는 노비 열 명이 말 한 마리 값 -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는 말 한 마리와 노비 열 명을 맞바꿨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말 한 마리 값이 은자 열냥 정도라고 했으니 노비 한명의 값이 은자 한냥에 불과 했던 셈이다. 이처럼 노비는 주인이 맘대로 사고팔 수 있는 동산이었다.

유럽에서 노비는 반인 반물이라 했고,우리나라에서는 육인사물이라고 한 사람도 있다. 즉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건이라는 것이었다. 경국대전에는 매매에 관한 규정이 있는데 가옥을 매매하거나 전답을 매매할 때 15일 안에 무를 수 있고, 100일 안에 등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주-노비도 또한 이와 같다.

재산상속을 할 때에는 일일이 노비의 숫자를 셈하여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노비들은 주인집의 상속에 즈음하여 부모 자식 간에 생이별을 하기가 다반사였다.

19세기에 들어와 노비의 수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노비는 주인이 맘대로 사고 팔 수 있는 대상이었다. 주인의 심부름을 하는 청지기, 상전이 외출할 때 수행하던 상노, 안방마님의 시중을 들며 이야기 상대를 해주는 안잠자기, 마님의 몸종인 상지기, 밥을 짓는 식모나 찬모, 바느질 하는 침모 등도 노비나 다름없었다. 이들 역시 매매의 대상이었는데, 동학농민운동 당시에는 소 한 마리에 미모의 계집종 하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노비와 맞바꾸었다.

다만 행랑아범, 행랑어멈 등이 이 시대에 생겨났는데, 비록 주인집의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었지만 노비처럼 매매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즘도 일자리의 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세상이다. 주인 맘대로 사고파는 시대는 아니지만, 갑을 관계가 난무하는 오늘의 모습이 과거보다 얼만큼 좋아진 것일까?

오룡 (오룡 아카데미 원장, 용인 여성회관,강남대 평생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