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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게 남겨지고 있는가?

오룡의 역사 타파(42)

권력에 취한 연산군과 재물에 눈먼 황희의 아들 황수신을 보라.

자신을 비판하는 사림을 제거하기 위한 조작한 정치 음모였던 무오사화. 왕권에 도전한다고 생각한 훈구파를 몰아내기 급조한 갑자사화는 연산군이 연출한 것이다. 연산군에게 사림과 훈구는 자신의 향략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비판세력을 몰아내고 경연을 폐지한 그는 전국에 채홍사와 채청사를 보내 젊은 여성들을 뽑아오게 했다. 또한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있던 원각사를 폐지한 뒤 그곳에 기생(당시에 운평이라 부름)들을 모아놓고 연방원이라 했다. 나라의 운세가 평안해졌고, 아름다운 꽃이 연달아 핀다는 뜻이니 정말 해석이 기가 찰 따름이다.

연방원에서 가무를 익힌 운평들이 수시로 대궐로 들어갔으니 그들을 흥청이라 불렀다. 왕이 운평에 의해 흥겨우면 나라도 흥할 것이라는 의미였다지만 연산군이 쫓겨난 이후에 흥청망청이 흥청과 놀다가 망했다는 사실로 널리 알려졌다.

구중궁궐에서 연산군이 흥청들과 어울려 있을 때, 흥청의 주변 인물들은 권세를 부렸다. 힘없는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고 행패를 부린 그들에 대한 원망은 왕에 대한 뒷담화로 나타난 것이다.


세종의 치세기는 영의정 황희의 뛰어난 업무 추진력과 관리의 모범이라 할 수 있는 청백리의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죽은 뒤 실록에 사관은 적은 기록을 보면 분명해 진다.

“황희는 관대하고 후덕하며 침착하고 신중하여 재상의 식견과 도량이 있었다. 후덕한 자질이 크고 훌륭하며 총명이 남보다 뛰어났다. 집을 다스림에는 검소하고, 기쁨과 노여움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재상이 된 지 24년 동안에 중앙과 지방에서 우러러 보면서 모두 말하기를 어진 재상이라 하였다.”

황희의 아들인 황수신도 대를 이어 영의정에 올랐다. 부자가 영의정에 오른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황수신에 대한 사관의 기록은 가혹하다.

“성황 심역황” 다섯자로 정리한 황수신에 대한 일생은 ‘성도 누렇고 마음도 누렇다’는 뜻이다. 치욕적인 인물평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문화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에 남겨진 그에 대한 평가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라고 되어 있다.

새로나온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일제 강점기 수탈에 대한 표현을 축소하려한 의도는 무엇인가. 좋은 일, 즐거운 일은 자랑거리가 되지만 아픈 일, 괴로운 일은 교훈이 되는데도 미래 세대들에게 아픈 과거보다 좋았던(?) 과거만을 알려주려는 것에 다른 속셈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련다.

자랑은 현재에 속하나 교훈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말한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던가.

일본의 우익 인사들이 “일본의 한국 통치가 큰 혜택을 주었다”고 말해도 망언이 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너희 역사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대로 말했을 뿐이다.”

오룡 (오룡 아카데미 원장, 용인 여성회관,강남대 평생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