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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삼전도의 치욕은 인조의 치욕이었다…2014년 세월호의 비극은 대한민국의 침몰이다.

오룡의 역사 타파(51)

1637년 1월 30일은 조선 역사 최악의 수치스런 날로 기억됐다. 용포를 벗고 청의(靑衣)를 입은 인조는 백마(항복의 표시)를 타고 남한산성 서문을 나섰다. 송파 삼전나루에서 청 태종 홍타시를 향해 삼배구고두의 예를 올렸다. 세자를 비롯한 조선의 대소신료들은 모두 울었다. 청 태종은 항복 의식 중에 고기를 개(犬)에게 던져 주었다. 항복한 조선은 개였으며, 고기는 황제의 은전이었다.

무능한 왕은, 리더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왕은 세 번이나 궁궐을 버렸다. 1623년 반정을 성공하여 중립외교의 광해를 몰아 낸 서인은 권력을 장악했지만 민심을 장악하지 못했다. 1624년 이괄의 난과 1627년 정묘호란은 시작에 불과했다.

삼전나루에서 그토록 무시하던 오랑캐에게 항복한 인조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백성들의 눈이 많은 남대문(숭례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서대문(돈의문)으로 우회했다. 돈의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한 노파가 손뼉을 치며 통곡했다.

“강화도에서 검찰사 등이 술판을 일삼아 백성들을 다 죽였습니다. 누구의 허물입니까. 네 아들과 남편이 모두 적의 칼날에 죽고 이 한몸만 남았으니… 하늘이여! 하늘이여!”「연려실 기술」에 그날의 참상을 기록해 놓았다.

구중궁궐을 버리고 자기 목숨 유지하는데 급급했던 임금, 십여 년 동안 한양 함락을 세 번이나 당했던 무능한 관료들이 외면한 1637년 1월22일 강화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636년 12월초 13만 명의 청나라 팔기군이 압록강을 건넜다. 청군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강화도로 인조가 피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바람처럼 달려왔다. 긴박했던 조선은 강화검찰사(강화 경비사령관)로 제찰사(전시 총사령관)인 김류의 아들 김경징을 임명했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도, 위기 대처 능력도 없는 김경징은 인조 반정의 일등공신이었던 김류의 후광 덕분에 한성판윤에 임명된 자였다. 강화도로 피난하는 사람들을 막고 자신의 가솔과 친구들을 먼저 보낸 그는 강화유수 장신과는 지휘권을 놓고 알력했다.

천혜의 요새였던 강화도의 지형을 믿고 청군의 행동을 살필 군사조차 배치하지 않았던 김경징은 청군이 상륙하던날 아침 가장 먼저 도망쳤다.

인조실록에는 기막힌 장면이 나온다.
“적병이 갑곶진을 건너자 김경징는 늙은 어미를 버리고 배를 타고 달아났다…김경징의 아늘 김진표는 제 할미와 어미를 협박하여 스스로 죽게 하였다. 강화유수 장신의 어미는 굶주림 속에 얼어 죽었다…김경징은 나룻배를 타고 장신의 배로 가서 달아났다. 천총(연대장급 장교) 구일원이 장신을 꾸짖고 물에 빠져 죽었다”

군림하려고 할 땐 한치의 양보도 없던 두 사람은 백성은 물론 제 어미조차 버리고 도망갈 때는 의기투합 한 것이다. 그들이 버린 강화도에서 수많은 조선의 백성들은 살육 당했으며, 조선의 여인들은 바다에 투신했다. 울부짖음은 강화해협을 넘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그 참상을 말할 수 없었다.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잠깐 느꼈을 인조는 안락한 창덕궁으로 돌아갔다. 조선의 백성 수십 만 명은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실록엔 다시 기록됐다.“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2014년 4월16일 대한민국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아우성쳤다. “선장님, 선장님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셨습니까. 어른들이여, 어른들이여, 우리를 왜 빨리 구해주지 않으십니까. 대한민국이여, 대한민국이여, 학생은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란 말입니까”

오룡(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