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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를 실시한 세종-1430년… 토지세 결정을 위해 17만여명에게 찬반을 묻다

오룡의 역사 타파(54)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대중은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전이 느린 진짜 이유는 그 소수마저도 다수의 대중보다 실질적으로 더 현명하거나 더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당신의 온 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고 핸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했다.

후보자에 비해 유권자들이 온 몸을 던져 투표하지 않기 때문일까. 6.4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예상보다 낮았다. 국민의 관심을 끌만한, 당장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 공약이 없었기에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1430년,공법(貢法)이라는 새로운 세법 시안에 대한 찬반 의사를 묻는 투표를 실시했다. 17만여 백성이 투표에 참여하여 9만8000여 명이 찬성, 7만4000여 명이 반대했다. 노비나 여성을 제외한 모든 백성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오늘날의 국민투표와 비슷한 것이다.

투표의 내용은 토지 1결당 10두의 세금으로 확정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이전까지는 관리가 직접 논밭을 돌아보면서 수확량을 확인하고 세금을 정하는 답험손실법(踏驗損失法)을 적용됐다. 이는 관리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세금이 정해졌기에 문제가 생겼다.

세종은 관리들의 의견을 들은 후에 최종적으로는 백성들에게 찬반 여부를 물었다. 세종의 지시에 따라 1430년 3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5개월간 전국에 걸쳐 투표가 실시됐다. 세종실록에는 “정부·육조와 각 관사와 서울 안의 전함(前銜) 각 품관과 각도의 감사·수령 및 품관으로부터 여염(閭閻)의 세민(細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否)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고 기록돼 있다.

실록은 각 도별 찬반 상황 외에도 찬성과 반대의 이유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투표 이후에는 세법의 보완 조치에 들어갔고, 1437년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공법을 시범적으로 실시했고, 1441년에는 충청도까지 확대했다.

1444년(세종 26) 공법은 마침내 연분 9등법과 전분 6등법으로 최종 확정됐다. 1결당 20두에서 4두에 이르는 차등 세금이 적용된 것이다. 연분 9등법과 전분 6등법은 토지의 비옥도로 6등급으로 나누고, 풍흉에 의해 상상(上上)에서 하하(下下)의 9등급으로 나누는 제도이다.

6.4 지방선거 결과에 따른 민심의 향배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쏟아지고 있지만 정부는 한 번 투표로 모든 것이 결판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토지세법에 대한 찬반 여부를 위한 투표에서 목적을 달성하고도 최종적인 판단을 14년 동안이나 미룬 세종을 주목해야 한다. 투표를 실시한 지 14년 만에 토지세법 기준이 확정됐고, 이는 조선의 기준 세법이 되었다.

왕의 권한이 막강했을 관리들이 모든 정책을 결정할 것 같은 조선에서 이처럼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세종이 왜 성군이며, 대왕인지를 6.4 선거에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 들이여 생각해 보라.

오룡(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