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인터뷰- 이병호 용인시시각장애인협회 회장

사라진 시력, 우울증 그리고 '봉사의 결심'

   
▲ 용인시시각장애인협회장 이병호
“지난 2007년 초, 평소와 다르게 눈이 침침해서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녹내장과 당뇨 성 망막출혈로 인한 시각장애였습니다. 사업에 올 인 하면서 건강을 돌볼 시간이 없었고 나름 건강하다고 느낀 나머지 건강에 무관심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결국 시신경은 점차 죽어갔고 2009년 말 완전히 실명했습니다.”

지난 2014년 1월 사)경기도시각장애인협회 용인시지회를 이끌게 된 이병호 회장은 막강한 추진력으로 사업을 이끌며 국내는 물론 외국까지 누비며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실명으로 인해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게 된 중도장애인이다.


사업이 재밌었고 왕성하게 활동했었기에 실명은 그에게 청천벽력이었고 견딜 수 없는 슬픔과 함께 바깥출입은커녕 매일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엎친데 덮친격이랄까? 이듬해 초에는 아들의 실명에 마음 아파하던 부모님마저 두 분 모두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나갔다.

이 회장은 “40대 후반까지의 시간을 정상적으로 활동했었기에 더욱 견디기 어려운 장애였다”며 “중도장애인이라는 힘든 생활이지만 지금은 주어진 일 열심히 수행하며 즐거움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여읜 2010년 말, 곁에서 그의 시름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던 지인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의 공부를 해보라”는 설득을 따르며 이 회장은 마음을 다잡아갔다.

지난 2012년 7월부터 점자공부를 시작했고 9월부터는 보행교육까지 함께 받으며 흰 지팡이가 그의 눈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초에는 안마사협회에 등록했으며 도우미의 도움과 대중교통을 이용해 안마교육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전에는 집 문턱을 넘어 밖으로 나오는 것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며 “중도장애인의 불편함에서도 빠르게 벗어나면서 일상에 적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3년 중순 어느 날, “여보, 실명 직후의 당신처럼 집안에서 현관문 밖을 두려워하며 우울증에 빠진 장애인들과 상생한다는 마음으로 시각장애인협회장에 출마해 보는 것이 어때요?”라는 부인의 권유가 있었다.

마침 회장임기가 바뀌는 때였고 이 회장이 중도실명자였기에 사회적 경험과 지인인프라를 이용하면 회원들에게 작지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욱이 아내의 “출마를 결심하면 내가 당신의 눈이 돼서 도와줄 것”이라는 말에 약했던 자신감에 쐐기를 박으며 출마를 결정했다.

회원 자택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선거 유세에 나섰고 부인은 눈과 비를 무릅쓰고 이 회장의 눈이 돼줬다.
이 회장은 “눈이 되어준 아내에게 내가 고맙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회원들 모두가 아내의 정성에 감동했다는 말을 전했다”며 “선거직전까지의 여론조사에서 꼴찌였는데 투표결과는 선출된 것이 아내의 정성이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회장에 선출되고 그는 기존의 점자와 보행교육 외에 풍물교육을 새로 시작하며 회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큰 호응을 얻었다.

푸드뱅크와의 협약으로 독거이거나 생활이 어려운 회원들에게 반찬 봉사를 시작했으며 6·4지방선거 때는 점자홍보물 제작을 의뢰받아 경기도내 가장 많은 오더를 이끌어내 적은 금액이지만 용인시시각장애인협회에 도움을 줬다.

중앙도서관에서는 점자프린터를 기증받았다. 앞으로 점자소식지를 발간해서 회원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한다는 계획이다.

이병호 회장은 “일을 벌이는 엄두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곁에서 조용히 도움을 주는 임·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내 눈을 대신하는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