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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애국을 말하지 말라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오룡의 역사 타파(58)

“아직도 신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우면 아직도 할 수 있습니다. 전선이야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았으니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1597년 음력 9월16일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은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生 死卽必生)’의 준엄한 훈시를 했다. “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감히 우리 배를 침범치 못할 것이니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힘을 다해 적을 쏘아라”

거제 현감 안위의 배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왔다. 이어 중군장 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도 차차 지휘선 가까이 다가왔다.

이순신은 안위를 불렀다.“안위야,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해서 어디가서 살 것이냐”“예, 어찌 감히 죽을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이순신의 위엄에 찬 질책에 안위는 황급히 대답하고 적진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이어 김응함에게도 큰 소리로 외쳤다.

“응함아, 너는 중군으로서 멀리 피해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할 것이지만 전세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둔다”그러자 김응함도 적진을 향해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의 형제 이름은 희신, 요신, 순신, 우신이다. 중국의 전설 같은 임금들인 복희씨와 요순우탕을 본받아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었다. 만약 이순신이 부모의 요구에 충실한 아들이었다면 평범한(?) 인물로 평생을 보냈을 지도 모른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다수의 위인들의 삶은 부모의 기대와 소망에 부응하지 못했다. 부모의 기대와 달리 불효막심한 자식이었을 것이다. 유교 중심의 사회에서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것이야 말로 불효중의 으뜸이었던 시대였다.

일제감정기의 많은 유명 인사들이 “나라를 위해 자식을 바치라”고 강연회를 다녔던 극악무도한 제국주의 말기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생떼 같은 자식들을 국가를 위해, 국민의 의무라며 당연하게 군대에 보낸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에게 국가의 존재이유를 모르게 만드는 일들이 백주 대낮에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건은 여전히 축소되고, 은폐되며 심지어 조작된다.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다양한 계층들이 의병에 합류했다. 대다수는 농민들이었다. 그러자 유식한 애국 계몽주의자들이 점잖은 말로 의병들을 나무랐다.‘시일야 방성대곡’을 써서 을사오적을 규탄한 장지연은‘지금은 헛되이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 때가 아니라 차분히 본업을 지키며 실력을 키워서 후일을 기약할 때’라고 말했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유식한 지식인들이 아닌, 무식한(?) 용기가 필요한 평범한 농민들이었다. 의병을 비웃던 대다수 계몽주의자들은 일본의 힘에 굴복하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용기가 없는 지식이 쉽게 변질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고위 공직자들이 국민을 향해 애국을 말하는 세상에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의 대사가 떠오른다.

‘ 충(忠)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



오룡 (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