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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우농의 세설-논어가 당신의 생각을 묻는다.

우농의 세설

논어가 당신의 생각을 묻는다.


공자(孔子)는 조정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마구간에 불이 났던 사실을 알고 사람이 다쳤는가? 만 묻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廐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 이는 논어향당편(論語 鄕黨篇)에 나오는 말로, 사람을 귀히 여긴 공자의 인품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불문마는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사람이 더 귀함을 비유하는 말로 회자된다. 하지만 백호윤휴의 생각은 달랐다. 한문은 특이하게도 구두점과 방점의 위치에 따라서 해석과 새김이 전혀 달라진다.

상인호불. 문마(傷人乎不/ 問馬). “사람은 다치지 않았는가 물어본 뒤에 말에 대해 물었다”가 윤휴의 해석이다. 물론 이렇게 해석해도 말보다 사람의 안위를 우선함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조선 후기, 경전의 전통적 해석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던 교조적 사대부 사회에서는 이런 해석을 용납지 않는다.

우암과 진외가를 한집으로 둔 깨벅쟁이 친구 윤휴가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린 이유이기도 하다. 백호윤휴는 논어에 관한한 방점 <문장의 끝점>과 구두점 <문장의 쉼표>에 관해서는 당대 1인자였다. 어려서부터 골계(滑稽)학습 <구두점이나 방점없는 책으로 공부하는데 고약스런 훈장이 가르치는 서당 공부에서 가장 어려운 공부법>을 한 탓이다.

공자의 인예(仁禮) 사상은 주희를 거치면서 주자학이 됐고 목은(牧隱) 한산 이가 후인(李家 后人) 색(穡)은 주자학을 조선 성리학으로 바꾼 인물이고, 조선 성리학을 율곡(栗谷)의 문인 사계(沙溪) <광산 김 후인 장생 아호>는 예학으로 승화시켰고, 이를 적통한 인물이 우암이다. 그런 그이기에 성현의 말씀은 후학이 임의로 가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현의 말씀을 변개한자가 뭔들 못하랴”라며 사돈이자 벗이며 동화사에서 삼전도의 치욕을 복수하자며 눈물로 맹세한 동지인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규정한다. 윤휴가 죽어가면서 말한다. “내 말을 믿지 않으면 될 일이지 죽일 것까지야 뭐있겠는가. 살다보면 선비가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지.”

보수논객 혹자가 말끝마다 북한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극좌파 의원 한분께 종북 딱지를 붙였다하여 보수논객에게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법정에 세웠다 한다. 종북이 아니라면 야무진 그 입으로 증명하면 된다. 종북이 아니라는 상징적인 말 한마디만 해도 될 것을, 법정까지 끌고 가는 것은 평소 그 답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