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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이 남긴 슬픈 고백, 우리는 지금 어떤 고백을 해야하나

오룡의 역사 타파(59)

오룡의 역사 타파(59)

살아남은 자들이 남긴 슬픈 고백, 우리는 지금 어떤 고백을 해야하나

배워라, 난민 수용소에 있는 남자여! 배워라, 감옥에 갇힌 사나이여!
배워라, 부엌에서 일하는 부인이여! 배워라, 나이 60이 넘은 사람들이여!
학교를 찾아가라, 집 없는 자여! 지식을 얻어라, 추위에 떠나는 자여!
굶주린 자여, 책을 손에 들어라. 책은 하나의 무기다.
당신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


저항 정신이 충천했던 시인은 히틀러가 집권한 독일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없었다. 브레히트는 허무주의의 관념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사회 참여시를 쓴다.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적극적인 진실을 말하겠다는 그는 <배움을 찬양함>에서 이렇게 외쳤다.

나치 독일이 서유럽을 점령하자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마르크시즘을 지지했던 시인이 주거지로 택한 곳은 자본주의 문화의 중심이었던 할리우드였다. 그 즈음에 브레히트가 남긴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는 수많은 친구와 가족들을 처참하게 잃고 살기위해 도망친 자신에 대한 절망과 자괴가 가득하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1948년 반민특위에 구속된 이광수는 자신의 친일 죄과를 사죄하는 의미에서 <나의 고백>을 썼다. 그는 자신의 친일을 참회하기보다는 변명과 미화로 일관했다. 그는 친일파 모두를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른바‘홍제원 목욕론’이 그것이다. 병자호란 당시에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오는 조선 여인들이 홍제천에서 목욕을 하고 들어오면 지난 시절에 대해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친일파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 사십년 일정(日政)밑에 일본에 협력한 자, 아니한 자를 가리고, 협력한 자 중에서도 참으로 협력한 자, 할 수 없어서 한 자를 가린다 하면 그 결과가 어찌 될 것인가. 일정(日政)에 세금을 바치고, 호적을 하고, 법률에 복종하고, 일장기를 달고, 황국신민서사를 부르고, 신사에 참배하고, 국방헌금을 내고, 관공립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한 것이 모두 일본에의 협력이다. 더 엄격히 말하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도 협력이다. 왜 그런가 하면, 그가 협력을 아니 하였던들 죽었거나, 옥에 갔겠기 때문이다. 만일 일정(日政) 사십년에 전혀 일본에 협력하지 아니하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해외에서 생장한 사람들일 것이니, 이들만 가지고 나라를 하여 갈 수가 있겠는가.”

15세기, 어전에서 신하들이 토론 한다. 왕은 신하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한참 후에 왕이 결론을 내린다. “경의 말이 옳소”

16세기, 동헌에서도 지방 수령은 고을민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실직고 하라.”
21세기, 광장에서는 가수 김장훈과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단식으로 요구한다.‘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들어 줄 수 있는, 들어 주는 권력자 들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저들은, 우리들은 고백한다.

‘국민을 위해 봉사 한다고...’ ‘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알고 있다고...’

오룡 (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