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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은 영웅이 아니다 - 이 땅을 지켜낸 진정한 바보였다

오룡의 역사 타파(64)

오룡의 역사 타파(64)

온달은 영웅이 아니다 - 이 땅을 지켜낸 진정한 바보였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하니 왕이 놀리며 말했다.“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자라면 틀림없이 사대부의 아내가 못되고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을 가야 되겠다.”

온달에 대해 사관 김부식은 왜 '바보'라고 기록했을까. 온달은 왜 '바보'라고 불리워진 것일까. 현대사의 전직 대통령에게도 '바보'란 표현이 쓰인 것을 보면 실제 바보는 아닐 것이다.

온달이 바보인 이유에 대해 삼국사기 열전 제5권에 명확한 이유가 나온다.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때 사람이다. 용모는 구부정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빛이 났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발을 걸치고 시정(市井) 사이를 왕래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온달이 바보라고 불린 이유는 겉모습 때문이었다. 한없이 착했지만 웃음이 날 정도로 못생겼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동냥을 해서 효도를 다하는 그를 국가는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유명 인사였다.온달을 찾아 온 공주가 황당한(?) 프러포즈를 하자 “이는 어린 여자가 하기에 마땅한 행동이 아니니, 필시 너는 사람이 아니라 여우나 귀신일 것이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갔다. 온달이 지극히 정상적일 뿐만 아니라 이성적인 이었음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고구려판 ‘슈퍼스타K’인 전국 사냥대회가 577년 평강왕 19년 4월 6일경에 열렸다.전국구 바보로 유명했던 온달의 참가도 황당했지만 그가 1등을 차지한 사실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온달은 말을 가장 잘 다뤘을 뿐만 아니라 사냥감도 가장 많이 잡아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온달이 등장한 직후에 북주의 무제가 쳐들어왔다. 북주의 침공으로 위기를 느낀 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한다.  중요한 전쟁에서 온달에게 선봉장의 중책을 맡긴 걸 보면 전국 사냥대회에서 평강왕이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이다. 북중국을 통일한 여세를 몰아 고구려를 침략한 북주는 선봉장 온달이 이끄는 고구려군에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공로를 논할 때 온달을 제일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왕이 그를 가상히 여기어 감탄하며 “이야말로 내 사위다.”라 했으니 스스로의 노력으로 왕의 사위로 인정받은 것이다.

영양왕의 허락을 받아 온달이 길을 떠날 때 맹세하며 말했다.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땅을 우리에게 되돌리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으리라!”마침내 떠나가 아단성(阿旦城) 밑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서 죽고 말았다.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가십시다.”드디어 관을 들어 묻을 수 있었다.

신라 공격의 최전선에서 싸우다 죽은 온달의 일대기를 경주 김씨 후손인 신라계인 김부식은 왜 이토록 상세하게 남겨놓은 것일까. 일신의 안위만을 궁리하는 문벌귀족들이 득실대던 12세기 고려 사회에서 필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바보 온달이 이루고자 했던 꿈.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바보처럼 성실하게 책무를 다하는 우리들의 꿈이리라. 신분 상승의 꿈이 아니란 말이다. 이 바보들아....

오룡 (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