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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위민 사상과 어느 전직 대통령의 자화자찬 허세의 차이점은 ‘주어’가 있고 없음 이다

오룡의 역사 타파(69)

오룡의 역사 타파(69)

영조의 위민 사상과 어느 전직 대통령의 자화자찬 허세의 차이점은 ‘주어’가 있고 없음 이다

18세기 이후 한양에는 거지들이 많았다. 왕이 사는 곳에 굶어 죽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오래된 왕도사상의 영향 때문이다. 전국의 거지들이 몰려든 혜화문 부근과 용산의 활인서에서는 날마다 죽을 쑤어야만 했다. 한 그릇 죽을 먹기위해 3000명의 굶주린 거지들이 몰려 들었다. 거지들의 대부분은 기근과 흉년으로 고향을 버리고온 빈민들 이었다.

왕이 나서서 배고픈 백성을 구휼하는데 신하들이 모른채 할 수 없었다. 서울의 부자들(대부분이 고위 관리였을)은 이때부터 거지들을 위해 빈자떡을 만들었다. 이 말이 변해서 유행가요에 나온 빈대떡이다. ‘돈 없으면 집에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에 나오는 빈대떡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영조 17년(1741) 좌의정 송인명이 “도성에 떠돌아다니며 빌어먹는 자가 매우 많으니 5부의 관원으로 하여금 친히 살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자원하는 자는 양식을 주어 보내고, 한양에 남고자 하는 자는 진휼청으로 하여금 구제토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에 영조는 “백성들의 사정이 이와 같은데 군왕이 그것을 듣고 떠날 사람은 떠나게 하고 머무를 사람은 머무르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떠나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를 돌보게 단단히 타이르도록 하라”고 명했다. 좌의정은 한양으로 몰려드는 빈민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영조는 군왕으로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 머무를 사람은 머무르게 하고, 떠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대로 두어 진휼하도록 명한 것이다.

한양에 빈민이 계속 늘어나게 되자 하수처리에 문제가 생겼다. 남산의 나무들은 땔감용으로 베어졌고, 그 주변은 경작지로 개간됨으로써 하천으로의 토사 유입량도 계속 늘어났다. 홍수로 인해 청계천이 범람하자 전염병이 발생하게 되니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됐다. 영조는 궁리 끝에 청계천 준설 공사를 지시했다. 청계천 밑바닥에 있는 흙을 파내고 수로도 직선으로 변경하며 하천 양안에는 석축을 쌓도록 했다.영조는 대역사를 착수하기 전에 백성들의 의견을 직접 들었다. 준설 공사도 곧바로 시행되지 않았다.

철저한 규정을 세우고 백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위해 세심한 배려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공사는 1760년 2월에 시작해 4월에 끝났다. 이 공사는 18만여명의 다양한 계층의 백성이 참여했다. 영조는 직접 현장에 나가 백성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격려했다. 영조는 준설 공사가 백성을 위한 것이지만 백성들을 괴롭힐 수 없다 하여 수만 민(緡: 동전 1000닢을 꿴 한 꾸러미)을 내어 노임을 주도록 하고, 공사를 재촉하지 말라고 했다. 6만여명의 백성들에게는 일당도 주었는데 다수가 빈민들이었을 것이다.

한양으로 모여든 수많은 빈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국가적 대역사를 일으키게 된 영조의 고뇌와 백성을 위한 마음이 엿보인다. 공사를 마친 뒤 영조는 준설 과정과 재원,인력 충원 방법,담당 관리 등을 자세하게 적은 <준천사실>과 <준천소좌목>도 편찬하도록 했다. 백성들의 조세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키는 균역법을 시행한 영조는 부족한 세금을 부유층에게 요구했고, 자신도 스스로 검약한 생활을 평생 실천했다.

4대강 사업을 실시한 어느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고 한다. "한 해 수백 명의 인명 피해와 수조 원의 재산 피해를 내는 수해에 대한 근원적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기초가 됐다"라고. 이런 원칙을 갖고 책을 썼다고 한다. ‘사실에 근거할 것, 솔직할 것, 그럼으로써 후대에 실질적인 참고가 될 것.’이라고.


오룡 (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