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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의 역사 타파(71)-애국과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한 짧은 생각

지금은 충군애국의 전근대적인 시대는 아니다.

오룡의 역사 타파(71)

애국과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한 짧은 생각 - 지금은 충군애국의 전근대적인 시대는 아니다.


1898년 10월 29일 서울 종로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단상에는 태극기가 걸렸고 의정부 참정대신 박정양, 중추원 의장 한규설을 비롯한 10여명의 정부 대신들까지 참여한 독립협회의 관민공동회였다. 지식인, 중인, 향리, 성균관과 사부학당의 학생, 신식학교 학생, 부인, 상인, 승려, 천주교도, 기생, 광대, 백정 등 신분과 관계없이 1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개막 연설은 백정 출신인 박성춘이 했다.

“이 사람은 대한에서 가장 천하고 무지몰각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이국편민 하는 길은 관민이 합심한 연후에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 차일에 비유하건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치면 역부족이지만 많은 장대를 합해 받치면 그 힘이 매우 공고해집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관민이 합심하여 우리 대황제의 성덕에 보답하고 국운이 만만년 이어지도록 하게 합시다.”

당시에 가장 급진적인 단체였던 독립협회의 생각도 나라는 백성의 것이 아니라 임금의 것이라 생각한다. 애국은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을 위하는 것이 어야 했다. 일제 식민통치기에 활동한‘애국금채회’,‘애국부인회’와 같은 친일적인 관변단체 들에게 애국이란 일왕의 나라를 지키자는 주장이었다.

1882년 박영효의 태극기 최초 사용에 대한 논란은 계속 중이지만 대한제국 시기에 백성들이 경사가 있을 때 집 앞에 걸어둔 것은 확실하다. 일반 백성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가 아닌 똑바로 서서 국기를 쳐다보는 것이 경배 의식이었다. 이 시기에 국기는 황제와 동격으로 인식된 것이다. 광복 후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국가 상징물과 국민의 관계에 대한 의미가 정립되지 못한 탓에 국기에 대한 이미지는 오래전의 기억이 유지된 것이다.

제1공화국의 신성모 국방장관은 공식 석상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에게 큰절을 올렸다.‘황공스럽다’와‘지당 하십니다’를 연발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 그의 별명은‘낙루장관’이었다. 신성모는 군 경력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다만 영국 상선의 선장은 했다. 북진 통일을 한다고 할 때 그는 국회에 나와 '5000톤 배 하나 주면 공산당을 다 치고 바다를 다 치겠다'는 호언장담까지 했다. 그가 국방장관으로 있던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고, 서울은 3일 만에 북한군에게 점령당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2015년 대한민국도 애국 마케팅은 유효한 모양이다. 태극기 게양을 위한 관련법 개정, 국기 게양과 하강식 실시 이야기들이 단순 논란일지라도 국민을 애국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애국의 본질은 태극기라는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마음일 것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이며, 그 국민 개개인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다양할 것이다. 특정한 행위만을 애국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발상일 뿐이다.

정부가 나서서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은 자발성에 근거한 애국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 애국은 개인보다 국가가 먼저 있다는 당위명제가 아니라, 개인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명제를 확인시켜줘야 할 때이다. 지금은 더 이상 충군애국(忠君愛國)의 시대가 아니다.


오룡(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