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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부정축재의 끝판왕들은 최고 권력자의 비호를 받았다

오룡의 역사 타파(74)

오룡의 역사 타파(74)

대한제국, 부정축재의 끝판왕들은 최고 권력자의 비호를 받았다

1935년 12월, 식민지 조선 최대 갑부였던 민영휘가 84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잡지 ‘삼천리’는 '민영휘 재산은 어디로 가나'라는 글을 실었다. 그의 재산 규모에 대해 ‘삼천리’는 '평안감사 시절부터 긁어 모으고 황실 내탕금을 이리저리하여 모은 것이 4000만원이고, 그 외에 중국 상해 회풍(홍콩상하이)은행에 적립하여 놓은 것이 수천만원'이라 한다. 4000만원은 현재 화폐로 약 1500억원에 해당한다. 대한제국 시기에 탐관오리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도 대표격인 인물로 지목된 사람들이 있다.

백성들의 원성을 받던 여흥 민씨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민영휘는 권력을 이용한 토색(討索·재물을 탈취함)으로 치부한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그의 부(父) 민두호도 돈을 긁어모아 '쇠갈구리'라고 불렸으며, 그가 추천한 민영주의 별명은‘망나니’였다. 무전취식이 주특기였던 그는 벼슬을 얻은 후에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부자가 되었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민영휘가 평안감사로 있으면서 고종의 신임을 얻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남정철이 과거 급제 2년이 채 안 되어 평안감사가 되었는데, 왕비의 친척이 아닌 사람이 이렇게 빨리 귀한 자리에 나간 것은 근세에 없던 일이었다. 그가 평양 감영에서 계속 진헌(進獻:뇌물을 바침)하자 고종은 충성으로 생각해서 영선사로 뽑아 청으로 보내서 크게 기용할 뜻을 보였다.

그러나 민영휘가 남정철의 자리를 대신한 후 작은 송아지가 끄는 수레를 금으로 주조해서 바치자 고종은 얼굴색이 변해서 ‘남정철은 참으로 큰 도둑이었군. 관서(평안도)에 금이 이렇게 많은데 그가 혼자 독차지했다는 말인가?’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남정철에 대한 총애는 쇠퇴하고 민영휘는 날로 중용되었다.” 국운은 기울어도 그의 권력욕은 끝이 없었다. 그는 “조선이 일본의 형제국이니 일본의 보호국 되는 것은 부끄러울 것 없다”면서 일본 황실 종묘를 매년 참배키로 하더니 마침내 총리대신 자리까지 넘보았다.

이런 그를 두고 대한매일신보는 “총리하면 타려고 마차까지 준비하였으나 마차는 부서지고 그 말까지 죽었다니 거미줄로 바위 얽듯 애를 쓰던 경륜이 도로아미타불이라. 말은 비록 미물이나 돈만 아는 저 화상을 주인으로 섬기기가 원통하여 죽었구나. 아들 빚 물어주고 칠일이나 병 앓더니 이번 저 말 죽은 후엔 며칠이나 통곡할꼬”(1910.2.5.)라고 냉소하였다.

1880년대 말 어느 날, 고종은 조회를 마치고 물러가려는 민영주를 불러들였다. “네가 요즘 대궐을 짓고 있다면서?” 당시 법도로는 종친도 99칸 이상의 집을 지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고종의 귀에 민영주가 100칸이 훨씬 넘는 대저택을 짓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처조카뻘이라 벼슬을 주긴 했지만 평소 망나니 소리를 들을 만큼 행실이 나빠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민영주는 낯을 붉히며 변명했다. “대궐이 아니오라 절이옵니다.” 고종은 재치 있는 대답이라 생각하고 돌려보냈다. 얼마 뒤 고종은 다시 민영주에게 물었다. “그래, 짓는다는 절은 다 지었느냐?” “네”
“절에 어느 부처님을 모셨느냐?” “세상 사람이 저더러 금부처라 하옵니다.” 뚱뚱한 풍채에 워낙 재물을 밝혀 붙은 새로운 별명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사람 나름이다. 동네의 망나니는 재수없게 걸린 사람만 괴롭혔지만,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고 얻은 망나니가 권력을 갖게되면 나라 전체가 괴로움을 겪게 된다.……시원한 비타500을 마셔야 겠다.


오룡 (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