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 (일)

  • 맑음동두천 23.9℃
  • 맑음강릉 21.9℃
  • 맑음서울 24.2℃
  • 맑음대전 24.9℃
  • 맑음대구 26.2℃
  • 맑음울산 27.0℃
  • 맑음광주 25.6℃
  • 맑음부산 27.3℃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2.1℃
  • 맑음강화 22.9℃
  • 맑음보은 23.7℃
  • 맑음금산 23.8℃
  • 맑음강진군 25.5℃
  • 맑음경주시 28.0℃
  • 맑음거제 26.0℃
기상청 제공

초기 고구려의 왕위계승 진실은 무엇일까 - 기록이 부실한 역사의 정통성

오룡의 역사 타파(75)

오룡의 역사 타파(75)

초기 고구려의 왕위계승 진실은 무엇일까 - 기록이 부실한 역사의 정통성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성이 고씨라는 사실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전한다. 김부식은 출처를 말하지 않았지만 일연은 신라의 거칠부가 지은 <국사>에서 인용했다고 적었다.

건국자 주몽은 고씨인데 아들인 유리부터는 해씨로 나온다.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의 성씨는 해씨이며, 북부여의 해부루도 해씨이다.

흔히 생각하기를 고구려라는 명칭이 주몽의 성씨에서 인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개토대왕비에는 추모라고 표기한 건국자 주몽의 성이 고씨가 된 것은 고구려가 고대국가로 성장하고서 불렸을 것이다. 춘추전국 시대의 여러 국가들은 건국자의 성을 나라의 이름으로 정했으니 자료가 부실했던 고구려의 역사기록을 김부식은 중국의 역사를 인용했을 수 있다.

주몽은 성씨 뿐만 아니라 왕의 묘호조차도 태조왕에게 밀린다. 6대왕 궁은 건국자도 아닌데 태조왕으로 불리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후한서> 고구려전에 “그 나라 사람들은 성질이 흉악하고 급하며, 힘이 세고 전투를 좋아하여 옥저와 동예를 모두 복속시켰다.” 중국의 기록에 고구려가 처음 등장하는 태조왕 시기를 기록에서 분풀이 한 의도는 수모를 만회하기 위해서 악의적으로 쓴 것이리라. 5대 모본왕은 사람됨이 사납고 어질지 못하여 국사를 돌보지 않아 백성들의 원망을 듣다가 시종에게 암살당한다. 주몽의 직계인 모본왕을 암살하고 왕위를 이은 태조왕에 대해 김부식은 국조왕(國祖王)이라고 별칭을 기입해 놓았다.

7세에 왕위를 이은 태조왕은 94년 동안 고구려를 통치한 후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그리고도 19년을 더 살았다. 왕위를 계승한 동생 수성(차대왕)의 나이가 이미 76세의 노인이었는데 20년을 통치하다 살해당한다. 차대왕을 살해한 쿠데타 세력이 추대한 백고는 태조왕과 차대왕의 동생으로 신대왕이다. 신대왕을 즉위시키고 한나라의 침략으로부터 고구려를 지킨 명림답부에 대한 <삼국사기> 기록은 차대왕을 살해할 때 나이가 99세였고, 죽을 때 나이는 113세였다.

고대인들의 수명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알 수 없지만 역대왕들의 수명은 기록으로 남아있으니 평균수명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수명이 50세를 넘기지 못했는데 그보다 천년 이전의 고구려 초기 왕들이 100세를 살았다는 것을 이해하긴 어렵다.

태조왕과 차대왕, 신대왕 형제의 왕위 재위 년도는 128년이다. 태조왕과 차대왕의 아버지인 재사는 5대 모본왕을 시해한 세력이 왕으로 지지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양하고 아들을 왕으로 내세웠다. 어린 태조왕의 섭정조차 부인에게 맡길 정도로 쇠약했던 그가 20년 터울이 나는 아들들을 낳을 수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주몽의 후손이었던 해씨 가문들. 즉, 소노부 집단을 몰아낸 계루부 가문들이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권력쟁탈이 치열하게 진행된 것일지도 모른다. 최종적인 권력 싸움에서 승리한 계루부는 태조왕으로 묘호를 정하고 여러 명의 왕위 계승자들이 나타났지만 누락되고 살아남은 왕들만 <삼국사기>에 남겨진 것은 아닐까? 그 와중에 생존 기간이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재위년도도 비정상적으로 이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기록이 완벽하게 존재하는 21세기에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언론에 남는 것처럼….


오룡(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