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 (일)

  • 맑음동두천 27.5℃
  • 맑음강릉 20.8℃
  • 맑음서울 26.8℃
  • 맑음대전 28.4℃
  • 맑음대구 30.1℃
  • 맑음울산 25.1℃
  • 맑음광주 28.6℃
  • 맑음부산 24.4℃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2.7℃
  • 맑음강화 23.6℃
  • 맑음보은 27.4℃
  • 맑음금산 28.0℃
  • 맑음강진군 29.1℃
  • 맑음경주시 31.0℃
  • 맑음거제 28.2℃
기상청 제공

메르스의 발생과 감염에 대처하는 대한민국 정부

오룡의 역사 타파(77)

오룡의 역사 타파(77)

메르스의 발생과 감염에 대처하는 대한민국 정부
손을 놓고 방치한 에비슨 인가, 억지를 부리는 살의 인가.

1884년 12월 갑신정변이 발생했다. 중전 민씨의 조카인 보수파의 상징인 민영익이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알렌의 치료에 의해 목숨을 구한 민영익, 그에 대한 보답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근대식 병원 광혜원은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이었다.

1896년 3월 3일, ‘사람을 구제하는 집’이라 불린 제중원 앞에서 사람이 죽었다. 광혜원을 이어받은 제중원은 선교를 목적으로 한 에비슨이 운영 중이었다. 1885년 제중원 개원 당시, 조선 정부는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진료한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관에게도 널리 알리도록 지시한 바 있었다.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치료한다는 원칙이 있었던 제중원을 찾았다가 죽은 오치서는 제중원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알고 온 것이었다. 평안도 서흥에서부터 먼길을 걸어 온 그는 에비슨에게 고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병원 진료실도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 제중원에서 쫓겨난 그는 탈진한 상태로 병원문 밖에서 밤을 새우다가 죽은 것이다. 에비슨이 오치서의 차림새가 돈이 없어 보였기에 진료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평안도에서 서울까지 병을 고쳐보겠다는 일념으로 먼 길을 걸어 찾아온 환자를 매몰차게 쫓아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자기가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치료하지 않은 에비슨은 처벌받지 않았다. 치료하지 못할 줄 알면서도 치료하겠다고 나서는 돌팔이 의사보다는 양심적이었기 때문일까.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차지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세조는 숱한 질병에 시달렸다. 스스로 업보라고 생각했던 그는 직접 의약론(醫藥論)이라는 글을 지었다. 자기병에 대해서도 처방을 내릴 정도였던 세조는 이 글에서 의사를 8종류로 나눴다.

환자와 마음으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의사를 심의(心醫), 음식으로 치료하는 식의(食醫), 처방할 줄은 알았으나 처방 시간은 못맞추는 약의(藥醫), 위독한 환자가 발생하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혼의(昏醫)가 있다.

또한 함부로 아무 약이나 쓰고 침을 놓는 광의(狂醫), 환자를 살릴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을 못하는 망의(妄意), 자격이 없는 가짜 사의(詐醫), 의학적 깊이는 있으나 환자를 측은하게 여기지 않는 살의(殺意)로 분류했다.

자신의 병을 치료하지 못한 전의(典醫)들에 대한 불신이 깊었던 탓인지, 그는 8종의 의사 중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의사(심의)와 음식을 조절하여 병을 다스리는 의사(식의)만을 좋은 의사로 분류했다.

특히 세조는 살의에 대해서는 따로 이렇게 적었다. “남에게 이기려는 마음만 가득하여 남이 동쪽이라 하면 서쪽이라 우기고, 먼저 말을 내뱉은 다음에 그를 합리화할 논거를 찾는데 찾지 못하면 억지를 부린다.

이런 자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환자를 죽인다.” 세조가 평한 살의는 ‘환자를 측은히 여기지 않으며, 궤변에 능하며, 자기 체면을 중요시하고, 자기가 틀린 줄 알고도 끝까지 억지를 부리는 자들’이다.

2015년 6월, 중동 호흡기 증후군(메르스)의 발생과 감염에 대처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의사의 모습에 가까운가? 손을 놓고 방치한 에비슨 인가, 측은지심조차 없는 살의 인가.

오룡 (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