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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의 역사 타파(98)

오룡의 역사 타파(98)

‘살아서 아름다운 것이 있었던가?’

살아서 눈부셨던, 사라져 비극적인 백제의 역사를 위로하기 위해 부여를 찾는다!

허망하고·슬프고·아련한·비운의 나라 백제의 도읍지 부여는 여전히 소박했다. 딱한 운명에 벌거숭이로 남겨진 백제의 고도(古都)는 천사백년전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시인 신동엽 생가는 고즈넉했다. 무왕의 스러진 꿈을 알 리 없는 궁남지는 연인들의 놀이터로 안성맞춤이다.

   
   
   
오래전 영화(榮華)가 사라진 구드래 항구의 낡은 스피커에서 울려대는 <꿈꾸는 백마강>은 애절했다. 삼천궁녀의 전설이 잡히지 않는 수심 6미터의 백마강엔 낙화암의 그림자가 어슬렁 거렸다. 부소산의 푸른 솔빛이 어우러진 백마강은 달밤이 아닌데도 청승 맞았다.

5만여명의 사비성민을 굽어 살핀 대자대비한 사찰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십오만의 당나라 군대에게 허물어졌다. 오만방자한 소정방도 무너뜨리지 않았던 정림사지 5층 석탑만이 날아갈 듯 경쾌했다.

능산리를 감싸안은 허물어진 나성엔 연두색 봄 햇살이 가득 뿌려졌다. 허망한 외성은 부실했고 초라했다. 1400년전의 빛나던 사비성은 잡히지 않았지만 금동대향로는 눈부시게 황홀했다. 660년 7월, 아비규환의 사비성 육좌평 거리였던 부여읍 로타리 중심가엔 계백장군이 긴창 꼬나쥐고 금방이라도 황산벌로 달려갈 기세로 서있다. 과거의 역사와 현실의 역사를 들먹이며, 부여와 백제를, 의자왕을 조롱하며 삼천궁녀의 낙화암을 위로하지 말라. 숱하게 찾았던 부여 박물관에서 깨진 기와와 질그릇과 비파형과 간석기를 보며 생각한다.

현재의 삶에서 과거의 삶을 연민하지 않겠다고. 뒤엉킨 역사의 불구덩이에서 홀로 살아남은 정림사지 5층 석탑앞에서 온전하게 빌었다. “우리의 역사가 더이상 황망하지 않도록 지켜달라고...”금빛 눈부신 영험의 대향로 앞에서 간절히 소망했다. “권력에 의해 ‘민’들의 생각이 조종되지 않도록 해달라고...”다시 부여에 와야겠다.낙엽 떨어지는 가을날, 신동엽 문학관에 방명록을 남길 것이다.‘껍데기는 가라’

오룡 (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