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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의 역사 타파(99)

   
처인성

오룡의 역사 타파(99)

죽주산성과 처인성엔 바람보다 햇살이 먼저 닿는다
- 한없이 단순한게 삶이요, 순결하지 못한게 역사다


저 먼 북쪽에서 노도같이 달려 올 몽골의 기마병은 사라졌다 8백년 역사가 손에 잡힐 듯 탁트인 죽주 산성의 정상에 오르는 호흡은 거칠었다.어사 박문수의 과거 급제 이야기와 천년 신라의 불통에 분개한 궁예와 부패한 훈구파들의 탐욕에 절망한 백정 임꺽정의 공통점은 칠장사다. 봄 햇발 가득 드리운 칠장사 대웅전 앞마당엔 늙은 누렁이가 한가롭게 졸고 있다.

밤새 내린 봄비로 씻겨진 처인성은 초록이었다. 용인 처인성, 교과서에 달랑 한 줄 나오는 역사의 현장에서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800년전의 토성은 무력했다.

성은 성답지 않았고, 고려왕조는 국가답지 못했고, 최고 권력자 최우마저 강화로 도망간 1232년 가을. 성난 파도처럼 밀려든 대륙의 적에 맞선 처인부곡민은 단순했다.‘살아 남아야 한다.’들판에 익어가는, 모진 노동과 억척스런 삶의 잉태물을 놓고 갈 수 없는 백성들의 단순성이 처인부곡을 지켜냈다. 작은 토성하나 점령하지 못하고 죽어나간 살리타이 보다 거친 손마디, 굽은 허리 펴지 못한 부곡민의 눈물겨운 삶이 역사여야 한다.김윤후는 말한다. “내가 적장을 죽이지 않았다”고. 그는 지도자이기 보다 부곡민이길 원했다.

1519년. 삶은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 했다. 현실의 운명은 그를 버렸다. 이 무의미한 삶조차 방치할 수 없었던 중종과 훈구 대신들은 37살의 조광조를 유의미한 역사로 남게했다.중종 실록에서 사관은 논평했다. ‘정이 부자처럼 가까울 터인데… 하루아침에 죽인것도 임금의 결단에서 나왔다. 조금도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니 전일 두텁게 총애하던 일에 비하면 마치 두 임금에서 나온일 같다.’리더가 사라진 오늘. 리더자 이길 포기한 오늘. 리더자로 모셔 주기만을 바라는 오늘.아무도 없는 처인성 터에서 냅다 고함친다. 그 고함의 끝이 어디까지 나아갈지 모르겠다. 그 고함의 대상이 누구에게로 향하는지는 분명해 보인다.

소멸해 가는 시간속에서 뒤에 흩어진 시간들을 모두 버리지는 말자. 과거는 잊고 미래만을 내다보는 시간이 아닌 현재를 조용히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살아서 보다 죽어서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는게 역사임을, 심곡서원의 조광조가 보여주었듯이,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말을 가지고 역사와 함께 간다



오룡 (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