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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의 역사 타파(104)

역사에서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다

오룡의 역사 타파(104)

 

역사에서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다

백여년전에 조선을 가장 먼저 배신한 나라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급변했다. 중국 중심의 질서가 무너진 가운데 대륙진출의 꿈을 키운 일본의 움직임은 비수처럼 움직였다. 얼지 않는 항구를 찾아 나선 러시아, 이를 저지하려는 영국, 만주로 진출하여 경제적인 이익을 실현하려는 미국의 외교전은 두 번의 엄청난 전쟁을 가져왔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프독의 삼국 간섭까지 발생했지만 한반도에서 최후의 승자는 일본이었다. 일본이 승리한 이유는 절박함 때문이다. 일본은 러시아의 만주와 한반도 진출이 동양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는 논리로 미국과 영국을 설득시켰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청나라에서 발생한 의화단 운동 진압에 서구 열강이 몰두한 틈을 이용하여 19018월 러시아는 만주로 진출했다. 1903년 러시아가 만주를 봉쇄하자 영국과 미국은 일본의 논리를 인정하고 군사동맹을 맺는다. 한반도를 둘러 싼 정세는 갈수록 일본에게 유리해져 간 이유가 있었다.

 

19018월에 미국의 루스벨트 부통령이 독일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일본이 한국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일본은 러시아를 저지하는 세력이 될 것이며, 지금까지 일본이 해온 일로 미루어 보아 그들에게는 한국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라고 써 있다. 그런 루스벨트가 19019월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미국은 1905729일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는다. 러일전쟁 끝난 후인 19059, 포츠머스에서 러시아와 일본을 불러 거중조정의 역할을 미국은 자처했다.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의 우월권을 승인한다는 내용의 비망록에는 일본이 한국 정부의 승인 하에 정치적으로 간섭할 수 있다고 기록했다. 조약문에는 정치적·군사적 간섭 내용은 표현하지 않았지만 비망록의 약속으로 일본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한국 정부의 승인만 얻어내면 한국을 점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보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종과 친미주의자들은 미국에 일방적인 구애를 계속했다. 1882년에 미국과 맺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제1조에 3국으로부터 공평하지 못한 일이 있을 경우에 반드시 서로 돕는다는 중재 역할을 그대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고종은 당시 미국 공사였던 알렌을 통해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는 1895년 운산광산 채굴권, 경인철도 부설권을 미국인 모스에게 알선해서 넘겨준 투기꾼에 불과했다. 고종은 알렌에게 1904년 훈일등(勳一等)과 태극대수장을 수여했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마자 곧바로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루스벨트가 일본을 지지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가 19044월 주미 독일 대사에게 한국 내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만 보장된다면 일본이 한국을 차지하더라도 상관없다라고 말했다.

 

백여 년 전에 한반도를 둘러 싼 국제 관계의 변화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다. 미래는 과거를 통해서 분명하게 보인다. 역사 바로 쓰자고 떠들기 전에 아는 역사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오룡 (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경기도립 중앙도서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