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으로 바쁘고 일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일이 많을수록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일의 성격을 구분해야 한다. 정신적인 것을 요하는 일과 육체적 노동을 요하는 일을 구분해서 처리하면 일의 능률을 효율화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일을 동시에 처리할 때 행동의 혼선을 갖기 쉽다. 사람은 하던 일을 계속하려는 관성이 있어 동시에 서로 상반된 일을 하게 되면 집중도가 떨어지며 머리만 복잡해지는 것이다. 단순 노동을 할 때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때의 업무 성향은 전혀 다르다. 전혀 다른 성질의 업무와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 자신의 바이오 리듬이다. 「바보들은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그냥 열심히 일만 하는 것이 언제나 해결책은 아니다. 하루일과는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구분이 필요하다. 특히 머리를 쓰는 일은 머리가 깨어 있고 효율이 나는 시간대를 찾아 처리해야 효과적이다. 이런 저런 듣고 얻는 것들이 많다고 해도 실제로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 남에 의해 통제받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이는 파스칼의 명상록에 나오는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갈대는 지극히 약한 식물이다. 바람에 휘둘리고 조그만 새 한마리가 앉아도 갈대는 부러지고 만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갈대처럼 약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힘을 갖는다. 사고성(思考性)이 바로 인간의 위대함이다. 인간을 동물에서 구별하는 근본 질서는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는 데에 있다. 생각하는 힘, 그것은 위대한 상상과 창조의 원천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은 생각하는 힘이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있다. 현대의 대중문명, 기술사회, 조직사회 속에서 현대인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자주적 사고의 훈련과 관습을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사회의 기계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생활습관은 단순화되어 가고 아울러 복잡한 현실 속에서 생각하지 않는 인간, 생각하지 않으려는 인간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최근 현대인들의 생각의 힘이 약해져서 지식이 도태되고 경쟁력이 약화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복잡한 사회 환경 속에서 개인의 경쟁력을 갖추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힘이 매우 중요한 역량으로 부각 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집착을 혼동한다. 집착은 사랑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구다. 이기적인 욕구를 사랑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서로가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하겠지만 줄수록 더욱더 맑고 아름답고 넉넉해지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남을 살리고 자신을 살리지만, 집착은 남을 죽이고 종래에는 자신도 죽인다. 집착을 통해 받으려고만 하면 점점 더 큰 것을 원하기 때문에 이기적인 욕구가 따르고 갈증 상태를 면할 길이 없다. 주는 사랑에는 집착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자꾸 받기만을 원하면 사람이 무뎌지고 오만해지고 불만과 괴로움이 따르게 된다. 일반적으로 집착에 대하여 남녀 간의 사랑의 예를 들지만 실제 사회공동체 생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형태의 집착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대상이 형태만 다를 뿐이다. 무형과 유형 그리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집착, 이성에 대한 집착을 비롯해서 가지각색의 집착으로 인해 본인은 물론 상대에게까지 피해를 주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평생 그 집착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스스로를 궤멸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상태로부터 집착하지 않는 상
사람은 대화를 통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새로운 지식이나 지혜를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전달하면서 살아간다. 기쁨을 전하기도 하고 슬픔을 전하여 다른 이를 울리기도 하며 아름다운 장밋빛 사랑의 이야기를 전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꿈꿔 보고픈 마음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말 한마디로 인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절망과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좋은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지만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고 절망에 빠뜨리게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하는 말이다. 그 말 한마디를 듣고 그가 힘을 얻었다면 전하는 사람은 더 많은 기쁨을 얻을 것이다. 언제든지 어려운 사람이 나를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늘 준비를 해야 한다. 좋은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 말을 하는 기회가 듣는 기회보다 더 많음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언제였던가 싶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며 듣는
오래전에 유행했던 인기 가요의 가사 중에 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라는 노랫말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가 자기 입장만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상대가 내 입장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 이상으로 나도 상대가 바라는 입장이나 위치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 일례로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 대수가 1가구당 1대 꼴에 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동차 숫자와 운전면허증 소지자는 많아지는데 자동차 문화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차에 타고 있을 때는 늦게 가는 행인을 욕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빵빵대는 운전자를 욕한다. 남이 차를 천천히 몰면 소심 운전이고, 내가 천천히 몰면 안전 운전이다. 지하철에서 남은 조금씩 양보해서 한자리 만들어 나를 앉게 해야 하고, 나는 한사람 더 끼면 불편하니까 계속 넓게 앉아 가야 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남은 내가 탈 때까지 열림 단추를 계속 누르고 기다려야 하고, 나는 남이 타거나 말거나 닫힘 단추를 눌러서 얼른 올라가야 한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쥐여 살아야 하고, 딸은 남편을 휘어잡고 살아야 한다. 사위가 처가에 자주 오는 일은
타인으로 부터 마음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은 결코 금전이나 어떤 보상적 차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상대방을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늘 배려하고 함께 하는 마음가짐이 더불어 사는 세상의 근본이다. 베풀기보다 먼저 받으려고만 하면 상대방은 멀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상대방과 약속을 하고도 어기게 되면 신뢰가 깨지기 때문에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늘 약속을 할 때는 신중하게 하고 약속을 했으면 아주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 있어서 당당 하라는 것이다. 나도 상대방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늘 당당하게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비굴하면 상대방은 멀어지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과 이러한 자세이다. 컬럼비아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세계적인 사이코패스 전문가인 로버트 헤어 박사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 없이 경쟁만 강조하는
죽어가는 사람을 큰 저울위에 올려놓고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기이한 실험이 있었다. 죽는 순간 영혼이 육체를 떠날테니 만일 영혼이 물질적 구조를 가졌다면 시체의 무게가 그만큼 가벼워 질것이라고 생각한것이다. 인격에 무슨 물량적인 무게가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 사람이 가볍다느니 혹은 무게 있는 인격이니 하는 표현을 가끔 듣는다. 확실히 현대인은 과거 어느 때보다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지식을 활용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들이 선인들보다 지혜롭다거나 훌륭한 인격을 가졌다거나 또는 그만큼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 할 수는 없을듯하다. 그 사람의 삶의 자세는 그가 처한 사회의 구조나 변화의 속도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각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구조가 단순하고 변화의 속도가 완만한 사회를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그 안에 자신의 역할을 신중하게 수행할 수 있었던 선인들에 비해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속도 빠른 변화를 체험하면서 현대인들은 그 사람됨의 무게를 차츰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의 인격은 언행을 통해 드러날 뿐 아니라 바로 그 언행을 통해 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