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은 ‘너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옆집 아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아침 신문을 가지러 현관문을 열면 언제나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던 아이였다. 처음에는 방학이라서 늦잠을 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작년 여름 방학 때는 학교 등교시간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는 그 아이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슬쩍 말을 걸었다. 방학인데 아침 일찍 어딜 가냐고 물었다. 아이는 힘없는 목소리로 학원을 간다고 했다. 방학 특강이 과목마다 있어서 하루 종일 밥 먹을 시간도 없다고 했다. 방학이 방학이 아닌 것이었다. 말하고 싶지 않은 하루 일과를 괜히 물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아이는 우울해보였다. 그런 아이가 겨울 방학이 한창일 요즘 보이지 않았다. 혹시 엄마가 아이를 생각해서 학원을 줄였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아이의 표정을 보니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초등학생이던 딸아이의 공개 수업을 간 적이 있다. 교실 뒤에는 벌써 엄마들이 한 줄로 포진해 있었다. 엄마들의 관심이 이 정도일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딸아이의 자리를
박소현 작가의 삶의 낙서 고양이를 부탁해... 따뜻한 관심이 필요해.. 몇 년 전 작은 새끼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다. 편의점 작은 상자 속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가 불쌍하다며 딸아이가 대책없이 데려온 것이다. 그 고양이는 나에게는 정말 싫은 불청객이었다. 검은색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소설속의 고양이도 그렇고 영화 속의 고양이도 그렇고 고양이는 내게는 기분 좋은 동물이 아니었다. 한바탕 야단을 맞은 딸아이는 훌쩍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책임을 질 수 없으니 빨리 원래 그 자리로 데려다 놓으라고 했다. 딸은 거기 데려다 놓으면 새끼 고양이라서 위험하다고 떼를 썼다. 나는 이 집에서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고 외출을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머리속이 복잡했다. 집에 들어온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하루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딸에게 전화를 했다. 딸은 울먹거리며 알았다고 했다. 집에 와서 얘기하니 딸은 동물병원에 가서 안락사까지 물어봤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으니 그건 아니다 싶어서 결국 그 고양이는 우리 집의 가족이 되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생긴 후 우리 집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별로 대화가 없던 딸과 나 사이에
박소현 삶의 낙서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말보다 행동이 빛바랜 우정 긴잠을 깨운다 “잘 지냈니?” 몇 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황함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마음 때문에 잠시 동안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머뭇거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친구는 전화가 끊겼다고 생각했는지 ‘여보세요’를 몇 번 반복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얼떨결에 끊어진 전화기를 쳐다보다가 다시 발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가 바뀐 줄 알고…순간 당황했네” 친구는 안도의 목소리로 반가움을 전했다. 10년이 더 흘렀던 것같다. 오래 된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그 친구는 상처가 컸던지 아무 말도 없이 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마음을 터놓던 친구가 많지 않았던 그녀에게 나는 몇 안 되는 친구 중에 하나였다. 섭섭함에 나도 몇 년을 소식 없이 지냈던 것 같다. “야, 이게 얼마만이니?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거야?” “별 일 있는 건 아니지?” “별 일은 무슨……그냥 생각나서 전화한거야.”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다음에 한번 꼭 만나자는 것이 대화의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그날 그 친구에게는 별 일이 있었던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짜
유람선의 추억 “언니, 저 애기랑 서울에 놀러왔어요” “그래? 지금 어딘데?” “한강가서 오랜만에 유람선이나 탈려구요” “그래 그럼 7시에 만나서 같이 유람선타고 저녁먹자!” 서울에 사는 사람보다 지방에서 놀러 온 사람들이 63빌딩을 더 자주 가고 오히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63빌딩을 자주 가지 않는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용인에 살고 있는 저도 유명한 놀이공원 근처에 살고 있지만 올 해는 한 번도 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거리가 주는 여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강 유람선도 그렇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서울은 가깝고 언제든지 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저 역시도 거의 10년 만에 다시 타보는 한강 유람선이었습니다. 고등학교 후배는 초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녀서 그때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며 설레여했습니다. 5살짜리 어린 딸의 손을 꼭 붙잡고 유람선을 기다리는 표정은 초등학교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했습니다. 저도 하루 종일 바쁜 일과를 마치고 유람선 안에서 유유자적 여유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하니 어느덧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듯 했습니다. 유람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풍경은 다양했습니다.
어린 시절, 새벽이면 골목마다 물건을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들이 있었습니다. 희미하게 기억해보면 소금이나 재첩국 같은 것이었습니다. 새벽이면 늘 들려오는 그 소리 바로 뒤로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땅한 국거리가 없을 때 엄마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아주머니를 불러 재첩국을 샀던 것 같습니다. 소금도 꼭 새벽에 소금을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를 통해서 샀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그 아주머니들을 불러서 꼭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대접했습니다. 한사코 거절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새벽에 밥이라도 먹었겠냐며 간단한 반찬과 따뜻한 밥을 차려주셨습니다. 아주머니들은 미안해하며 소금 값이며 재첩국 값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면서 있는 밥에 반찬 주는 건데 부담 갖지 말라고 하시며 아주머니들의 부담을 덜어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물건을 사는 엄마는 그 아주머니들에게는 갑(甲)이었을 텐데 을(乙)이었던 아주머니들은 엄마의 갑(甲)질 때문에 따뜻한 하루를 보내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부터인가 갑(甲)이라는 의미가 조금 부정적인 것으로 변질되고 있는 듯합니다. 연일 뉴스에서는 부당한 갑질에 대한
봄날은 간다 따뜻한 봄이 오면 눈 딱 감고 여행 한번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년을 목표로 작은 적금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돈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쓰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뭔가를 공부해볼까?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랑 멀지않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올까?’, ‘아니면 용기내서 혼자 한번 여행을 가볼까? 혹시 우연히 여행지에서 첫사랑을 만나지 않을까…….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이 내게도 생기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그럼 우선 꼭 사고 싶었던 옷 한 벌을 살까? 아니 옷을 살려면 우선 살부터 빼야하니까 그 돈으로 한 달 동안 헬스를 하고 살을 뺀 다음 옷을 사고 여행을 가면 되겠다. 이렇게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시작된 거창한 적금이 이제 딱 한 달 남았습니다. 한번만 더 넣으면 드디어 꽉 찬 통장이 내 손에 쥐어질 것입니다. 꿈은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 지금 너무 소박해져버린 내 꿈이 초라했지만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큰 꿈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이루기 쉬운 작은 꿈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를 위해서 오롯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저절로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