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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사람

Mr. Toilet Man의 ‘화장실 사랑’

Cover Story | 세계화장실협회 심재덕 회장(현 국회의원)
화장실이 인류를 질병에서 구하고 지구환경까지 지킨다
뒷간서 태어나 인류 위해 일하다 뒷간서 인생 마감할 터

   
 
세상과의 첫 만남이 ‘뒷간’이었던 사람이 인생의 마감까지 ‘뒷간’에서 하겠다며 사상 초유의 화장실 문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Mr. 화장실’.
‘Mr. 화장실’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고유브랜드로 세계화장실협회 심재덕 회장의 애칭이다. 눈 내리는 1월 그를 만나기 위해 수원시 이목동의 해우재(解憂齋)를 찾았다.
뒷간에서 태어나면 오래 산다는 속설을 믿고 정말로 그를 뒷간에서 낳은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업보였을까. 심 회장은 화장실과의 인연조차 남달랐다. 얼마 전엔 정당을 탈당하고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현직 국회의원이다. 정계를 떠나 화장실 문화운동에 전력투구 하겠다는 각오다.
몇 년 전 그의 어머니 장례식 때 가봤던 그의 자택을 찾아갔지만, 그 시절의 흔적은 없어졌고 “아! 저 집이로구나” 하는 새로운 모형이 눈에 띄었다.
집 입구에는 ‘해우재(解憂齋)’라는 표석이 있었다. 그리고 대문 앞에는 ‘Mr. Toilet’s House’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해우재는 사찰에서 화장실을 일컫는 ‘해우소’와 같은 말이다.
해우소는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본디 우리 조상들은 열악한 환경의 뒷간을 명상공간으로 비유했다. 그런데 심 회장은 한술 더 떠서 뒷간 혁명을 주창하며, 모든 화장실을 아름다움이 숨 쉬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문화원장과 문화시장을 거푸 지냈던 이력의 소유자답다. 수원시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화장실 문화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심 회장이다.
얼마 전엔 독일 공영방송 뉴스에서도 긴 시간을 할애해 해우재를 소개할 만큼, 전 세계가 심 회장의 화장실문화운동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해우재’
취재팀은 눈 때문에 빨리 출발했지만 포근한 날씨 덕에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했다. 그런데 이미 KBS 취재팀이 ‘해우재’를 취재하고 있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이미 알려진 해우재는 양변기 모양의 독특한 형상으로 건축됐다. 쇼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화장실을 배설공간으로 치부하는 세상 사람들의 공동된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은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화장실 변기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집안에 들어가 있으면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미묘한 상황이 연출된다.
해우재는 지난해 11월 준공과 함께 한국기록원의 기네스북에 ‘최초· 최대 변기 모양 조형물’로 등재됐다. 지하1층, 지상2층의 연면적 420여 ㎡ 규모의 해우재에는 방 3개와 화장실 4개가 있다. 또 1층 거실 중앙에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최첨단 화장실이 자리잡고 있다. 처음엔 거실에서 화장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여 민망했지만, 볼 일을 볼 땐 스위치를 조작하면 불투명 유리로 바뀐다. 예술 공간으로 탄생한 해우재의 모든 공간은 설계로부터 마감공사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한 것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뒷간 혁명 주도
심 회장이 화장실에 관심을 갖게된 동기는 2002년 월드컵 때문이었다. 1996년 수원시가 월드컵 개최지 신청을 했는데,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 심 회장에게 공중화장실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몸에 소름이 끼쳤고, 정말 머리가 쭈삣 서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그때 화장실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게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수원시장이었던 심 회장의 화장실 운동 불씨는 그렇게 당겨졌다. 무슨 도로나 큰 건축물도 아닌 10여 평에 불과한 화장실을 지어 준공식까지 했다. 준공식에 초청 받은 지역내 기관 단체장들은 웬 화장실까지 준공식을 하냐며 불평불만을 늘어놨다. 심 회장의 의중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심 회장의 속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심 회장의 화장실 사랑은 그렇게 수원시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전국적으로 아름다운 화장실 만들기 캠페인이 이어졌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 공중 화장실 문화가 획기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세계로 확산 운동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심 회장 개인에게는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2002년 시장 선거 낙선 원인중 하나가 화장실이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평당 건축비가 아파트보다 비싸다는 정치공세가 이어졌다. 그는 선출직 시장이면서도 유권자 표보다는 소신과 철학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 시장 재임시절 그는 화장실 뿐만 아니라 쓰레기 봉투 값과 물 값도 대폭 인상시켰다. 당연히 서민층과 주부들의 반발이 거셌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낙엽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봉투 값을 230%나 올렸다. 인상안에 대해 측근들은 강력히 반대했다. 심지어, 정 그렇다면 매년 조금씩 올리라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나는 지금도 인상안에 대한 소신과 철학은 변함이 없다. 쓰레기를 줄이고 물을 아껴야 지구환경이 보호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표를 먹고사는 선출직 정치인으로서는 정말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고, 화장실 문화운동까지 이어왔다.

#화장실 혁명이 인류구원의 길
“지금도 세계인구의 40%(26억명)가 화장실이 없어 자연에서 대소변을 처리하고 있다. 이는 곧 위생문제로 이어지며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가 화장실 운동을 하는 세 가지 이유 중 첫 번째가 바로 ‘인류를 질병에서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인 만큼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구환경을 보존하자는 것이다.
“내가 산자부장관이나 대통령이라면 물 값을 대폭 올리고 국민들을 설득하겠다. 그런데 정치인들조차 표를 의식해 물 값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또 “물이 부족하다고 댐을 막느니 마느니 할 필요가 없다. 물 전체 소비량의 약 50%는 화장실에서 쓰인다. 변기에서 물 한번 내릴 때마다 10리터 이상 사라진다”고 말한다. 해우재에서는 옥상에 떨어진 빗물까지 저장탱크를 설치해 생활하수로 재활용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간은 화장실에서 나올 때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해우소’의 뜻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화장실운동은 수원에서 처음 시작한지 12년이 됐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7년 이내다. 1999년 한국화장실협회가 창립한데 이어 2007년 11월엔 세계화장실협회가 창립돼 총회를 치렀다. 그가 바로 세계화장실협회 초대회장이다.
전 세계 70여개 국가가 세계화장실협회 총회에 참여했지만, 안타깝게도 일본이 거부했다. 화장실이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 화장실운동의 메카가 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속내를 보여준 것이다. 심 회장은 일본의 속 좁은 행위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을 잡았다. 저급한 화장실 문화의 상징이었던 중국을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화장실문화운동의 또다른 메카로 만들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세계화장실협회를 유엔기구로 등록시키겠다는 것이 심 회장의 욕심이다. 그리고 세계본부는 화장실 문화운동의 본래 메카인 수원시에 두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수원시에 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수 없다.

#화장실은 휴식공이자 문화공간
“고속도로나 관광지 등의 화장실은 많이 변했지만, 깨끗하다고 다 된 것은 아니다. 이젠 화장실은 그림과 음악이 있는 휴식공간이자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 심회장의 화장실문화운동 이론이다.
심 회장은 어딜가나 누구에게나 “화장실은 더 이상 배설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떠나야 한다. 아름다워야 한다. 그림과 음악이 있고, 화초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오랜 시간 경기도의 수부도시인 수원시에서 문화원장과 시장을 지냈다. 무소속 당선자로 이름을 떨쳤던 그는 ‘문화시장’이라는 닉네임이 아직도 따라다닌다. 한때 옥고를 치루는 역경도 있었다. 결국 무죄가 입증됐고, 국정을 다스리는 국회의원이 돼 명예를 회복했다.
그리고 이젠 세계인들이 그를 ‘Mr. Toilet Man’이라고 부른다.
부인 선정선(57)씨는 “어떤 외국인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호텔도 가지 않고 짐을 다 들고 해우재를 찾아왔고, 어떤 분들은 카페인줄 알고 잘못 들어오시는 분들도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해우재를 찾는 방문객 수가 많다는 뜻이다. 방명록을 보니 귀찮을 만도 해 보였다.
심 회장은 거실에 마련돼 있는 화장실 기금 모금함을 가리켰다. 화장실이 없는 세계 각국으로 보낼 기금 1000원씩을 모금한다고 했다. 우리 취재팀 3명도 각각 1000원씩을 모금함에 넣었다. 비록 1000원이라는 적은 돈이지만, 그 의미만큼은 정말 크게 느껴졌다.
인터뷰가 끝난 후 해우재를 방문한 주 터기대사 출신의 권영재 경기도 외교안보자문관과 해우재의 건축주이자 집주인 심재덕 선정선 부부와 취재팀이 근처 식당을 찾았다.
허름한 한정식에 손님이 북적였다. 식사를 끝내고 화장실 문을 여니 좁다란 화장실 안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고, 예쁜 그림이 걸려 있었고, 꽃이 있었다.
심 회장은 “이것 좀 봐. 이렇게 변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며 자신이 권해서 바뀐 것임을 암시했다. 식당 주인도 나서서 “덕분에 손님들이 너무 좋아 하신다”고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해우재解憂齋)
해우재는 세계화장실협회 회장 부부를 위한 주택이며, 추후에 화장실과 관련된 전시·문화공간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건물의 형태는 화장실에서 출생한 건축주가 ‘변기 같은 집’을 상상하면서 시작되었다. 세계화장실협회의 공공위생과 물환경에 관한 메시지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며, ‘Mr. Toilet’이라는 브랜드를 형성하는 브랜드스케이프(Brandscapes)의 일부이기도 하다.
하우재는 수원시 외곽에 자리한 약 2,000제곱미터 대지 위에 2층 규모로 건축되었다. 차후 전시·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내부 구조 요소를 최소화하고 외벽을 따라 구조적 요소들을 배치, 실내 공간의 재구성이 용이하도록 설계했다. 1층은 가운데 놓인 화장실 주위로 손님용 침실과 거실, 서재, 식당, 주방 등이 자리하고, 2층은 안방 등의 건축주 부부를 위한 사적 공간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층은 거실과 화장실 상부의 보이드를 통해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된다.
1층 중앙에 독립적으로 자리한 화장실은 양단부에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는 유리를 사용해 화장실 내부가 거실 생활의 일부로 확장되며, 거실 공간과 외부의 자연이 ‘화장실 내부’ 또는 ‘화장실을 통해’ 연속될 수 있도록 계획했다. 하나의 면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입면을 따라 흐르는 창들은 내부 동선과 공간의 기능적 필요에 따라 점진적으로 넓이가 변한다. 이를 통해 정원과 대지 주위의 자연은 내부 공간을 따라 하나의 흐름으로 경험할 수 있다. <설계자 고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