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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화와 다양성


여러의견이 있겠지만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것 또한 ‘민주주의’란 기본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언제나 다양성을 내포하며 진화해 온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상생을 중요시하는 사회이건, 적자생존에 충실한 사회이건, 두가지가 다 섞여있는 사회이건 ‘다양성’은 항상 존재해 왔다.

다양성이 빈약한 사회는 질이 떨어진다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이말을 뒤집어 보면 획일화의 양이 늘어난다면 단순하고 유치한(?)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만약 어느 누가 인간이 ‘기계’와 ‘자연’ 중 무엇을 닮았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자연’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연’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도 하다. 그 누군가 그 다양성을 없애려고 해도 우리의 본성으로 굳어진 ‘다양성’은 멸종하지 않는다. 그 ‘다양성’은 자연이고 곧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북한이나 다른 획일화된 사회에서의 다양성은 ‘가짜 다양성’이다. 조작되고 가공된 이념적 테두리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곧 ‘부자연(不自然)’의 일부이고 ‘다양성’이란 정체성 자체가 의심스러워져 온전한 의미가 아닐 수 밖에 없다.

지금 용인시는 현수막에 대한 획일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표준현수막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틀을 정해 놓고 글자만 바꾸어 게시하라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광고에 대한 효율성에 대한 문제가 대두 되고 있다. 물론 너저분한 광고 게시물에 의한 도시미관의 어지러움을 생각한 측면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 규제가 다양성의 사회를 저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획일화된 현수막은 제작자나 의뢰자 모두에게 실효성을 담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를 볼 때 ‘획일화’된 사회는 발전 보다는 퇴보의 결과를 가져온 사례가 많다. 물론 군대 같은 특정한 집단에서는 획일화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군대에서도 개개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도시미관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현수막에 개성을 부여하는 것이 곧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정부분에서 획일화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것을 즐기지는 않길 바란다. 자유와 개성를 사랑하는 사회라면 획일화는 경계대상일 수 밖에 없다. 또한 그런 획일화된 사회를 어떤 정체성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회의 질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을 인정하는 절대명제부터 생각해야 한다. 개인을 비롯한 인간사회는 언제난 자연상태이며, 자연상태은 그 개체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양성 보다는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획일화에 치우친 측면이 보여지는 용인시의 현수막표준화를 다시 검토하길 바란다.
서정표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