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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용인 초(草)

용인애향가 3절의 노랫말 가운데 “용삼의 영약과 용인초(龍仁草) 향기”라는 것이 있다. 한 때 용인에서만 자생하는 무슨 향기 좋은 특이한 식물이 있었는지의 여부를 놓고 궁금하게 생각한 일도 있었으나 알고 보니 이 ‘용인 초’라는 것은 곧 담배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1899년(고종36)에 간행된 ‘양지군읍지’ 토산 조에 ‘남초(南草)’ “읍내면 남촌, 용곡리, 주동면의 추계리, 주서면의 반곡리, 어득운리(지금의 운학동), 해곡리, 주북면의 대대리 등 처에서 나온다.”고 하였으니 곧 지금의 양지면 일원에서 양질의 담배가 생산되었음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도 원삼, 백암 지역에 가면 담배를 건조시키던 곳간이 더러 눈에 띄기도 한다. 남초란 서울의 남쪽에서 나는 연초(煙草)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전에 용인문화원장을 지낸 고 박용익씨 생전의 말을 빌리자면 “용인의 황연초(黃烟草)는 나라에 바치던 진상품” 이였다고 하였다.

남초란 서초와 같은 이니셜인데 ‘경도잡지’ 차연(茶烟)조에 “평안남도의 삼등과 성천 등지에서 ‘금사연’ 이라는 담배가 생산된다. 속칭 서초라고 하는데 매우 진기한 물건이다” 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남초는 서초와 같이 담배를 지칭했던 말이고 또 남쪽의 특산물을 상징하는, 일종의 ‘상표’와 같은 대명사였음을 알 수 있다.

이의 전통은 최근세에까지 이어져서 1960년대 만 하더라도 당시 전매청에서 담배를 수매 보관하던 공판장이 용인 역북동에 있었다.

담배라는 명사는 본래 ‘담파고(姑)’라는 할미의 무덤에 나 있던 풀의 일종인데 원산지는 중앙아프리카이며 콜럼버스가 유럽에 전파했고, 아시아에는 폴투갈 상인들에 의하여 필리핀에 처음 전해 졌으며 한반도에는 16·7세기에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명칭도 우리나라에서는 ‘담배’로 유럽에서는 ‘투바고’로 일본에서는 ‘다바꼬’라고 하였으니, 이 명칭들은 모두 본래 어원인 ‘담파고’에서 유래했던 것으로 보인다.

광해군은 조정의 어전회의 때마다 대신들이 피우는 담배연기가 임금에게 옮겨가서 화가 나 임금이 금연을 하도록 했다는 기록(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이 있어 광해군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며 또 대신들은 담배를 피워가며 어전회의를 했던가보다.

『경도잡지』의 기록을 보면 “비천한 자는 웃어른 앞에서 감히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고관들이 거리에 나갈 때에는 그 앞에서 담뱃대를 물고 담배를 피우는 것을 엄격히 금한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어른 앞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피우는 것을, 예의나 상식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기는 것도 이에서 연유된 우리네의 오랜 전통인 듯하다. 요즈음 세상에는 아무데서나, 젊은 사람들 뿐 아니라 처녀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까지 길거리에서 담배를 물고 다니는 것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우리 나이 세대의 사람들은 횟배앓이를 하는 사람이나 어린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면 통증을 멈추게 한다고 해서 회충구제나 배앓이 진통의 수단으로 담배를 약으로 피웠던 시대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한때는 약초로, 또는 심심할 때 피우는 심심초가 용인을 대표하는 명품으로서, 용인애향가의 한 소절 속에 아직 남아있으나, 지금은 “용삼의 영약과 함께 용인 초 향기”의 유효기간이 소멸된,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