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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사람

내면으로 향한 종착역 없는 붓터치

‘내적 시선’ 주제로 4월 9일부터 19일까지 개인전박숙현의 더굿피플/| 한국화가 송수련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관조적 세계를 탐미하고 있는 그녀가 남기는 작품은 점과 면,
그리고 바람의 흔적과도 같은 선에 집중돼있다.
세상사의 군더더기를 지워내고 그녀는 오직 정수(精髓)를 길어 올리고 있다.
내적 시선’을 제목으로 오는 4월 9일부터(오픈 오후5시) 19일까지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17번째 개인전을 여는 한국화가 송수련(중앙대학교 예술대 교수).
기흥구 마북동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 “전시 도록이 방금 전에 도착했다”며 도록을 한권 건내준다. 첫장을 넘기니 오광수 평론가의 글이 눈에 띈다. “송수련의 작업은 그린다기보다 지운다는 역설적 방법에 지지된다.”
‘그린다기 보다 지운다’는 말.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관조’를 견지하고 있는 그녀가 남기는 작품은 점과 면, 그리고 바람의 흔적과도 같은 선에 집중돼있다. 세상사의 군더더기를 지워내고 그녀는 오직 정수(精髓)를 길어 올리고 있다.
본질로 다가서려는, 내면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그녀의 작업에는 종착역이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은 연속선상에 놓여있다. 끊임없이 반복적 고투를 되풀이 하는 시지프스와도 같이 마침이란 있을 수 없다.
먹색 혹은 붉거나 푸른 채색 바탕에 흰점 검은색 점이 점점이 박혀 있는 그녀의 작업장은 세상의 모든 만물이 우주의 별자리 속으로 빨려들어 간 듯 시간과 공간을 흡수한 채 둥둥 떠 있다. 보면 볼 수록 신비롭고 끝없는 무한성에 빨려 들듯 하다.
송수련 선생은 혼자 밤 늦도록 앉아 붓질을 멈추지 않는다. 점점이 번져나는 고혹적인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일까.
기자가 송수련 선생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때마침 “오늘(20일)이 석주미술상 시상식이 있는 날”이라며 시간되면 오라는 전화가 김윤순 한국미술관 관장으로부터 걸려왔다. “기라성 같은 한국의 여류가 이 상을 타게 되는데, 이상을 타기가 무척 어렵다”는 김 관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송수련 선생의 2004년 석주상 수상이 더욱 빛나게 느껴진다.
#상대방 내면을 알면 더 친해지고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자연의 내면, 생명력, 혹은 영혼을 포착하고 표현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작업량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한길 사람속도 모른다는 말이 있듯 내면 세계의 무한성에 매일 매일 미흡함을 느끼는 그녀는 내일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고 했다. “피곤해도 좀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만족이 없는, 도달보다는 그때그때 마침표를 찍는 과정일 뿐 끝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계속 이어나갈 부분이에요.”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그림
구상에서는 마무리가 되지만 그녀는 총체적인 자연에서 느껴지는 정서를 포착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녀의 상상력 속에서 표현된 그림에는 모든 자연이 녹아 있고 풀 한포기, 보잘 것 없는 돌멩이 하나를 보듬는 사랑과 경외감이 깃들어 있다.

#관조의 일관성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그림을 그려온 그녀는 고교시절 국어 시간에 시인인 교사가 설명을 잘 해준 ‘관조’라는 말에 끌렸다. 그때 막연하게 “앞으로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되면 관조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그림은 물론 가정생활부터 사회생활까지도 모든 걸 관조라는 말에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한테 있어 관조란 사전적 의미와는 거리가 있지만 모든 대인관계라든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직접 맞부딪치지 않고 다스리는 삶을 살게 해줍니다.”

#그림의 변화
그녀는 성격상 같은 일을 계속 못한다. 형식은 크게 변하지 않으나 그릴 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하는 게 그녀를 신명나게 한다. “같은 것은 나 자신을 모방하는 것 같아 싫어요.” 1990년부터는 점 시리즈를 해오고 있다.
호암미술관의 분청사기전을 보면서 도공이 말랑말랑한 흙에 찍어나가는 그 마음을 전해 받았다. 그녀의 상념 기억 추억 혹은 분노마저 찍혀나간다. 점이 바탕이 되면서 그림이 풀려나간다.

#2006년 오랜만의 외도
2006년, 오랜만에 연잎을 담았다. 80년대에 진주 국립경상대에 처음 부임하게 된 그녀는 우연히 보잘것 없는 연밭을 보게 됐다. 자주 그곳에 들렀던 그녀는 연잎 몇장을 주웠는데 10년이 넘도록 잎이 하나도 상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연잎에는 진주에서의 그녀의 생활과 기억이 담겨있다. “내 작품에 녹아들어 그림으로 환생했다고 할까요. 섬유질이 한지의 섬유질과 맞고 퇴락의 미학같은 거. 싱싱한것도 좋지만 시들어가는 것도 나에게는 예뻐요. 소멸해가는 과정의 미를 포착하고 싶었어요.” 그녀는 길가의 풀도 꺾지 못한다. 사랑이고 생명에 대한 존중이다.

#3녀1남의 형제중 3녀 모두 화가, 딸도 화가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부친과 숙대 가정학과를 졸업한 어머니 사이에서 화가들이 대거 배출됐다. 바로 밑에 동생은 서양화를, 그 아래는 조소, 딸 이보름씨는 이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는 딸에게 “너 좋아하는 것 하라”며 수놓는 숙제를 대신해줄 정도로 자녀들의 진로를 적극 밀어준 여성이었다. “제 스스로 판단할 때 재능은 없어요. 초중고교때 실기대회에서 큰 상을 못타 상처가 컸는데, 아마 그런 상처 때문에 오히려 계속 그림을 그렸는지 몰라요.” 유화는 처음부터 싫었고 수채화를 좋아했던 그녀는 고교 시절 짧은 순간을 사사받은 이종상화백(서울대 명예교수)이 “너는 동양화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진로를 정했다. “재주 부리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한대로 열심히 했는데 보답을 못해드렸다”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모습이 마치 그녀가 관조를 통해, 내적시선을 통해 도달 한 정수를 보는 듯 하다.

#정년 후 해외에서도 공감 기회 주어지길
“사람은 기억에 의해 성장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전문성이 살아있는 미술 교육을 받아야 우리 국민이 미술에 대한 안목이 높아지는 것이죠. 그림도 예술도 취미이면서 특기여야 합니다.” 우리 국민의 문화적 안목을 높이기 위해서는 잘된 교육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정년을 앞두고 있는 그녀는 리타이어, 즉 새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자신의 그림에 대해 함께 공감할 기회가 주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마침표란 마치 만족하는것 같지만 그건 아니에요. 미진함 가지고 도전하는 게 감사한 거죠. 좀 더 다가가는, 그것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