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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사람

글이 분수처럼 샘 솟는 문필 부부

남편, 송후석씨 9권, 박청자씨 10권 책 발간아들 딸 장조카 며느리까지 … 문필가 집안

   
 
박숙현의더굿피플/| 송후석·박청자

우편물이 왔다. 수필집과 시집이 각각 1권씩 두 권이 들어있다. 춘당 송후석씨가 보내온 수필집 ‘그림의 떡’과, 시집 ‘하얀 눈꽃’(교음사 刊).

아, 지난해 새로운 시집과 수필집을 받은 것 같은데, 벌써 또 다른 수필집과 시집이 나오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열정의 샘이, 글이 분수처럼 넘쳐나고 있는 분.

2002년 수필로 등단해 벌써 수필집이 4권 째 출간됐고, 시도 등단해 시집은 5권 째다. 모두 9권의 책을 발간했다.
열정은 춘당 뿐만이 아니다. 부인인 연운 박청자씨도 같다. 1년 먼저 수필로 등단한 문단의 선배이기도 한 연운은 남편보다 1권 많다. 10권의 책을 냈다. 지난해는 소설로 등단했다. 딸도 수필집을 냈고, 막내 아들이 시로 등단한 것은 물론, 장조카 며느리까지 수필로 등단한 문필가 집안이고 보면 이들 부부의 글에 대한 열정을 온 집안의 자녀들이 닮은 게 분명하다.

인생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부부. 이들 부부의 사는 모습이 궁금해졌다. 자택을 방문했다. 두 부부는 각기 작업공간을 별도로 마련해서 글을 쓰고 있었다.

춘당은 방에서 글을 쓴다. 그동안 작품을 발표했던 문예지며 이번에 새로 나온 책을 지인들에게 보내기 위해 누런 봉투에 담아 묶어 놓은 꾸러미들이 방에 빼곡하다. 마치 방의 분위기도 한편의 수필처럼 느껴진다. 소박한 문인의 방이다. 36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친 후 아들이 사준 컴퓨터를 앞에 놓고 밤새 자판을 두드린다.

부인 연운의 집필 공간은 마루다. 온갖 나무와 초화가 가득한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을 한다. 가끔 2층에 있는 또 하나의 작업 공간에 올라가 글을 쓰기도 한다. 펼쳐진 상 주위에 책들이 차곡 차곡 쌓여있다. 참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문필의 향이 은은하다.

#원래 경희대 국문과 출신
공직에 오랜 시간 몸담고 있던 분이 어찌 이리도 글을 잘 쓸까.
“원래 학교를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어요. 당시는 소설을 하려고 했어요. 소설가 황순원 선생님이 지도교수였는데 당시는 200자 원고지에 만년필로 쓰던 시절이었어요. 1958년, 그러니까 내가 4학년 때 ‘단엽(斷葉)’이라는 단편을 썼는데 선생님이 한번 보시고 다듬으라고 했었죠. 그런데 그해 11월에 군에 입대하고 제대 후 취직하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들다 보니 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어요.”

그렇구나. 춘당은 원래 소설가 지망생이었구나. 궁금증이 풀렸다.

#용문지에 실린 단엽을 찾습니다
작품 단엽은 당시 용인 출신의 대학생 30여명이 내던 회지 ‘용문지’ 2호에 게재됐는데, 지금 그 책을 찾을 수가 없어 춘당의 애간장을 태운다. 어렴풋 기억이 날뿐 자취도 없어져버린 처녀 작품에 대한 애착, 절절한 그리움을 누가 알까. 컴퓨터에 빼곡히 써내려간 소설이나 시, 혹은 논문이라도 좋다. 혹은 기념할만한 사진들이라도 좋다. 그것들이 어느 한 순간의 실수로 컴퓨터에서 사그리 지워져 버렸을 때의 그 황망함을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갈 것이다. “당시의 글의 내용을 기억해 내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아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다 잊어버렸어요. 그때 나는 어느 여인의 불행해진 삶에 대해 썼는데, 재구성하려 해도 되질 않아요.”

그때 군에 입대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유명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을 지 모를 일이다. 지금처럼 복사기가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작품을 보관하려면 처음부터 원고를 배껴쓰는 길 밖에 도리가 없던 시절, 원고는 바라지도 않고 다만, 당시의 회원들을 수소문해 작품이 실린 회지를 찾아보지만 너무 오래된 책인데다 이사 등으로 인해 보관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안타깝다.

#일년에 최소한 한권의 책은 펴낸 것
두 부부는 어떻게 그리 다작을 할 수 있을까. 주위의 작은 일상도 눈여겨 보는 아름다운 마음과 눈이 두 부부를 바쁘게 만드는 것이리라.

“쓰는 게 게으르면 등단패 타더니 게으르다고 할 것이고, 글 쓰는 게 시원찮으면 상에 대한 욕이 될 수 있으니 부담스러워요.”

춘당이 글을 부지런히 쓰는 이유도 그의 수필집에 나오는 한편의 수필 같다. 수필집 ‘그림의 떡’을 읽다보면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일상이 모두 글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상에 대한 느낌과 교훈, 지식과 지혜가 간결하게 잘 표현돼 있는 그의 글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세상사가 정리 되는 듯한 느낌이다.

연운의 글에는 시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손주들을 돌보는 할머니로서의 정 등 가족과 일상에 대한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마음이 담겨있다. “우리 며느리가 하는 말이 아버님 글은 교훈이 담겨있고, 어머님 글을 물 흐르는 듯 편안하다고 해요.”

#70세가 다 돼 우습고...
“지방공무원을 하다 보니 당시 격동기였고, 통 글을 쓸 시간이 없었어요. 공무원을 마치고 큰애가 컴퓨터를 사줘서 글을 썼더니 아내가 등단을 시켰어요. 개동모자 등 글을 써놨는데, 아내가 내 글을 나 몰래 가져다가 수필문학회에 제출한 것이 등단의 계기가 됐어요. 등단이란 게 50년 늦게 해서 70이 다된 나이에 우습고….”

마치 소년 소녀처럼 두 부부는 번갈아가며 춘당의 등단 당시의 과정과 느낌을 이야기 한다. 연운의 남편에 대한 칭찬과 사랑이 가득한 자랑으로 대화가 춘당 쪽으로 많이 기운 느낌이다. “대꼬챙이 같아도 천사 같은 사람이에요.” 청렴하게 공직생활을 마친 남편에 대한 찬란한 찬사가 뒤를 잇는다. 아름답다.

#처녀시절 그렸던 그림
연운이 2층으로 안내해 올라갔더니 연운의 또 다른 면모가 펼쳐진다. 그림과 서예에 대한 조예가 깊다. 글, 그림, 서예 등 너무 다양한 장르에 능하다. 늠름한 호랑이가 설경을 배경으로 서있다. 결혼 전에 그렸던 그림인데 훌륭하다. 독수리 그림도 그렇다. 부인의 그림이 너무 훌륭하다고 했더니 춘당은 흐뭇해 한다.

#백구시단과 화홍시회 이끌던 시아버님이
문필의 세계로 이끌어
연운의 첫 수필집 ‘아버님 우리 아버님’에는 이미 돌아가신 시아버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존경이 가득 담겨 있다. 극진히 시부모를 모시고 그 시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은 내용이 가득하다. 한시를 했던 시아버님의 사랑으로 서예를 시작하면서 한시며 시며 수필, 그리고 소설도 시아버님의 사랑처럼 유수같이 흐른다. 그러고 보니 두 부부와 그 자녀들의 시심의 뿌리는 두 부부의 아버님이자 시아버님인 가천 선생님이다. 유고 한시집과 한시 가운데 교훈적 의미가 담긴 글을 도자기로 구운 것을 두 부부가 나에게 전해 준다. “은혜는 잊지 않는 것이 갚는 것이요, 원망은 혐오 않는 것이 덕이 된다.” 황송하다. 두 부부는 한시집을 번역해 책으로 펴낼 계획이라니 조만간 번역 한시집을 편안히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춘당의 수필집과 시집을 받은 친구가 한지에 써 보내온 감사의 답글. 문향이 오가는 향기가 있는 삶이 많이 부럽다. 부부는 오후에 서울 이수역에서 있을 시낭송회에 함께 참가할 예정이다. 멋진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