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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23| 저녁눈 | 박용래

저녁눈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눈발을 기다리다가 이제야 「저녁눈」을 품속에서 꺼내 읽는다. ‘눈물의 시인’이라 불리던 박용래 선생은 1980년 11월 21일 눈감았다. 그 날, 조문객보다 싸락눈만 그의 빈소에 붐볐는지는 모르겠다. 저토록 맑고 슬픈 마음의 눈을 가진 시인은 하도 가난해서 “딸의 등록금을 빌리러 와서는 하루 종일 울다 가”(故 이문구)고, 후배 시인의 “막걸리 한 대접을 받아들고는 또 하루 종일 울었다”(이근배 시인)고 한다. 인간 내면의 ‘울림’이 사라지고 포성의 울림만 들려오는 이 겨울 저녁, ‘울음’이 사라지고 자화자찬 폭죽만 난무하는 시계(詩契)를 생각하며 나는 막걸리 파는 ‘말집(추녀를 사방으로 삥 두른 집)’ 침침한 탁자에나 걸터앉아야겠다. 눈발이라도 들이치면 더욱 좋고.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