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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29|단디해라|권혁재

단디해라

권 혁 재

 

가장 간절한 말이어서
짧다
가장 염려하는 말이기도 하여서
또 짧다

식전 첫차를 타고 객지로 떠나는
아들의 어깨 너머로
태초의 말씀처럼 건네는 한 마디
처음 나를 독립된 개체로 치켜세우면서
세상 속으로 밀어 넣던 어머니의 목소리

병상에서 흐린 눈빛으로 나누던
한 박자 끄는 울림이
두레박 닿는 메아리로 되돌아오고

솔갈잎을 긁는 듯한 유언은
애틋하고 간절한 말씀이 되어
짧게도,

니, 단디해라.


 

‘단디해라.’ 이 말은 경상도 사투리, 사랑과 염려와 기도가 담긴 어머니의 한 말씀. 이 말 저 말 속마음 다 꺼내지 못하는 경상도 엄마의, 단조롭지만 눈물 대신 건네는 말투. 첫차를 타고 객지로 떠나는 아들에게 ‘단디해라’고 말 건네던 가난한 엄마는 죽기 전 병상에서도 아들에게 한 말씀 남기시느니, ‘니, 단디해라’. 권혁재 시인은 아산만에 연한 평택 신대리가 고향이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 다수가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경상도 경주 영천 사람들이 일제 말 살길 찾아 철원으로 이주하였고, 전쟁 통에 다시 쫓겨 내려와 힘겹게 자리 잡은 곳이 신대리. 더 이상 생의 변방으로 떠밀릴 수 없던 바닷가 벼랑, 그의 부모는 이곳에서 지난하게 살다 갔다. 권혁재 시인은 고난의 가족사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역사의 상처를 보듬는다. 평택 기지촌 사창가의 모습을 암울한 흑백 톤으로 그려낸 「토우」로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가 얼마 전 두 번째 시집 『잠의 나이테』를 상재했다. 「단디해라」를 읽으며, 나는 어쩌면 한 번쯤은 뵌 적이 있을 것도 같은 권혁재 시인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무슨 연유로? 내 조부모께서도 일제 강점기 때 충청도 공주에서 평택시 팽성읍 도두리로 이주해 오셨으니, 바로 권혁재 시인이 살던 신대리 옆 마을이었던 것이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