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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30|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전윤호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전 윤 호

 

이삿짐을 싸는 데 익숙해진 그녀는
내가 없어도
쉽게 떠날 준비를 끝낸다
내 몫으로 남겨진 가구나 이불들은
너무 낡거나 무거워서
버리고 가도 괜찮은 것들이다
필요하다면 가볍게
그녀는 기르던 개도 이웃에 준다
함께 산 지난 오 년 동안 기른 머리를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싹둑 자른 그녀는
요즘 취한 내 옆에서 자지 않고
슬그머니 부엌으로 빠져나와
주소를 쓰지 않은 편지를 쓴다
송곳니가 빠진 날 무표정한 얼굴로
오래 살펴보면서
냉장고와 함께 밤을 새는 그녀는
낯설게 아름답다


 

세상의 모든 결혼한 남자들은 알고 있거나 곧 알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아내들은 어떨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예, 이제 더 이상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아이들만 잘 거둬준다면 말이다. 물론 그런 때가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무덤 속까지 가슴에 묻고 가야하겠지만. 왜 우리는 예외 없이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우리가 정말 사랑해서 결혼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일까.
모든 사랑은 이미 과거에 다 끝난 것일까? 왜 우리는 나이 들수록 사랑한다는 말을 잊고 사는 것일까. 사랑이 있던 자리에 어느 날부턴가 아파트와 자동차와 옆집 여자와 현빈이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부터 반성하게 만드는 시다.
전윤호 시인은 대책 없이 솔직해서 탈이다. 어느 간 큰 남편이 대놓고 아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큰소리로 떠들 수 있단 말인가.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