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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34|지상에서2|성윤석

지상에서 2

성윤석

 

앞만 보고 갔다네
언제나 공사 중, 공사 중인 이 세상
맨홀에 빠질 뻔했다네
어두컴컴해서 배후가 보이지 않는 맨홀
우리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네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고
집과 집을 잇는 송수관이 보였다네
그래도 나는 걷는다네
도처에 있을 맨홀
그래서 더 우리가 다치지 않는지도
모른다네 동굴 같고 다락 같고
요나의 고래 뱃속 같고
한번 멋모르고 빠지면 깊게
들어가 온몸이 망가지는 심연 같고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맨홀이
있을까 없을까 생각하며 산다네
한 번씩 뚜껑을 열고 세상을 쳐다보는
맨홀 내 심연은 어디로 갔나
여기에서 먼가


 

당신은 맨홀 위에서 살고 있다. 세상은 구멍투성이,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은 복개천 위일 수도 있고, 정화조 위 일수도 있으며, 하수관이나 지하도 위일 수도 있다.
‘멋모르고 빠지면 깊게 / 들어가 온몸이 망가지는 심연’을 삶이라고 하자, 죽음이라고 하자, 이 지구라고 하자. 우주에서 보면 지구도 하나의 작은 구멍, 우리도 지구처럼 발을 헛디딘 것일 뿐.
성윤석 시인, 그가 서울시립묘지 관리인으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공원묘지, 그 뚜껑뿐인 심연의 비탈 위에서.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