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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42|봄의 강가|유종인

봄의 강가

유종인

 

언젯적 곡두라는 말 새로 들으니
귀신이란 말 군동내가 나
샛강 가 바위 밑에
숨어 살라 했지, 이즈음

영구치가 치받아 가만히 유치(幼齒)가 흔들리는
딸애가 둘, 그 두 딸에
눈독이 지긋한
아내가
하나,
한나절 춘란(春蘭)의 고백 같은 꽃대의 가만한 졸음 곁에
슬픔의 데릴사위 같은 내가
서넛,

봄이 거위영장처럼 다니러 오는
강가에 서면
혁명이나 팔자거나 숙명이나 간에
모두
눈이 흐려오는 앞 강물을 뒷강물이 지긋이 밀어내듯이

맹목(盲目)도 사랑의 쪽매이었지
그걸 깨우칠 듯 봄이 와선
귀류(鬼柳)라 불리던 저 수양버들 치렁한 가지에
슬쩍살짝 뺨을 맞고 선
뇟보 같은 나도 있다니

그러면, 딴청 피우듯
딴청을 따돌리고
다시 흘러오는 물살의 눈매와
늙으나 고운 사랑의 아득한 눈매도
뺨에 스치는 버들잎처럼 갈마들어 오겠지

 

 

 

유종인은 천상 시인이라고. 그가 시를 쓰지 않았으면 ‘슬픔의 데릴사위’가 되었거나 ‘눈독이 지긋한’시인의 남편으로나 살았겠지. 그의 눈망울을 보면 참으로 순한 소를 보는 듯해서, 웬만큼 눈치가 없는 사람도 그의 전생쯤은 단박에 알아맞힐 수가 있다니까. 봄 강가에 서면 갑자기 하릴없어 지는 걸 나도 알아. 시가 물 위로 떠오르고, 굳이 상징을 들이대지 않아도 이별 혹은 죽음 같은 말들이 강물 위를 떠다니지. 그러니까, 일이 없더라도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강가에 한 번 서보라고. 내 인생이 얼마만큼 흘러왔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냐?
<박후기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