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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45|예감|황규관

예 감


황 규 관

 

이제 사랑의 노래는
재개발지역 허름한 주점에서 부를 것이다
가난한 평화는 한 블록씩 깨어지고 있다
그 아픔의 마른 냄새를 맡으며
잃어버린 대지를 찾지 않겠다
모든 밥벌이가 단기계약이듯
사랑도 이제 막바지다
새끼들 칭얼거림을 다 듣고
아내의 지친 한숨도 내 것으로 한 다음에야 노래는
터져 나올 것이다
깨어진 기억은 길가에 치워져 있다
천장이 한없이 낮아
일찍 취하는 주점에서
마시고 내린 빈 잔을 가슴에 가득 담을 것이다
사랑은 막바지고
외로움도 좋다
백척간두가 내 힘이다
그러나 다시 노래는 울고 말 것이다
끝내 오고야 말 폐허까지
폐허의, 폐허의 아침까지


‘천장이 한없이 낮아 일찍 취하는 주점’을 알고 있다. 천장이 낮아서 들어오거나 나서는 사람들이 서로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머리를 숙여 인사를 나누는 곳, 그래야만 하는 곳이 시내 경안천변 어디쯤에 있다. 막걸리 주전자와 김치찌개를 내어 놓고는 취객이 가거나 말거나 방안에 들어가 텔레비전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주인장 할머니의 쓸쓸한 폐허를 나는 기억한다. 할머니의 폐허보다도 먼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경전철 콘크리트 교각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비 개인 저녁. 할머니와 경전철 선로만 놓고 보자면, 도대체 무엇이 폐허인가? 집 나간 마음이여, 이 밤 폐허에 들러 딱 한 잔만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