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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46|가나안|이영광

가 나 안

이영광

 

가나안 교회를 어디로 가야 하나요, 그녀는
물었고, 길이 복잡하니 따라오라고 나는 말했다.
마음에 든다는 듯 그녀는 웃었다. 꽃무늬 재킷 전체가 웃었다.
서른이 안 돼 보이는 여자가 마흔이 넘은 나를
내 생애의 어떤 여자보다도 기쁘게 따라왔다.
벚꽃이 지고 있었다. 언덕 밑 자드락길 파밭 지나
골목에 접어들어서도 나는 몰랐다. 놀랐다.
가나안 교회를 얼마나 가야 하니, 반말로 그녀가 다시
물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별안간
블라우스 앞섶을 홱 열어젖히고 맨가슴을 꺼낸 채로
달려들어서, 내 목을 끌어안고 매달려서가
아니었다. 문득 여자의 등 뒤에서 여자를 꼭 닮은
늙은 얼굴이 나타나 깔깔대는 알몸을 철썩철썩
때려가며 옷을 입히고, 사과도 없이 허둥지둥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아, 나는 정신없는 몸 앞에서
정신없이 옷깃을 여미는 인간이구나. 나도 몸이었구나.
하지만,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니. 어떻게
견디지 않을 수 있었니. 벗은 몸이라도 내밀어야 했던
참혹이 있었던가. 다 벗어던지고라도 따라가야 했던
순간이 누구에게는 없었을 것인가. 살 떨리는 그곳이 비록
독과 피가 흐르는 저주의 땅이라고 해도.



레밍이라는 쥐가 있다. 북남미에 있는 작은 쥐로, 이들은 4년에 한 번씩 급격하게 숫자가 늘어나서 자기들끼리 숫자조절을 하기 위해서 절벽으로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다 벗어던지고 따라가야 했던 참혹의 순간’을 우리는 견디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5년은 레밍쥐의 4년보다 길다. ‘독과 피가 흐르는 땅’이 천국이라고 믿게끔 만드는 게 종교의 책무는 아니다. 동족을 죽음으로 이끄는 게 리더 레밍쥐의 책무도 아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앞선 자의 꼬리를 밟고 절벽을 향해 뛰어가야 하는 것일까.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