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0 (금)

  • 맑음동두천 23.1℃
  • 구름조금강릉 29.0℃
  • 맑음서울 23.1℃
  • 맑음대전 23.9℃
  • 맑음대구 27.4℃
  • 맑음울산 26.0℃
  • 맑음광주 24.1℃
  • 맑음부산 23.1℃
  • 맑음고창 24.4℃
  • 맑음제주 20.6℃
  • 구름조금강화 20.8℃
  • 맑음보은 24.1℃
  • 맑음금산 25.3℃
  • 맑음강진군 24.2℃
  • 맑음경주시 29.3℃
  • 맑음거제 22.4℃
기상청 제공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1|멸치|전 연 옥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1

 

멸 치

                    전 연 옥

 

지난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라고
내 몸에 달디단 기름을 발라 구우며
그대는 뜨겁게 속삭이지만
노릇하게 내 살점을 태우려 하지만
까닭 없이 빈 갈비뼈가 안쓰러움은
결코,
이 빠진 접시 위에 오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님을

비틀거리며 쏟아지는
한 종지의 왜간장에 몸을 담그고
목마른 침묵 속에
고단한 내 영혼들이 청빈하게 익어갈 때면
그 어느 것도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에
쓰라린 무릎을 끌어안고
여기는 에미 애비도 없는
서럽고 슬픈 저녁 나라이더냐
들풀 같은 내 새끼들
서툰 투망질에도 코를 꿰는 시간인데
독처럼 감미로운 양념 냄비 속에 앉아
나는 또 무엇을 잊어버려야 하며
얼마만큼의 진실을 태워야 하는지



 

권력은 우리에게 자꾸 잊으라고 강요한다. 빅 브라더는 말한다. 너희들의 머릿속까지 들여다보며 감시하고 있으니 행동하지 말고 잊을 건 잊으라고. 역사도 잊고 과거도 잊고 불편한 현재는 더더욱 잊고 살라 말한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아는 게 병이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진실은 불편하다. 불편하다고 그것을 외면하면 입도 뻥끗하지 못하는 세상에 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의 과거가 말해주고 있다. 400번의 구타와 14번의 거짓말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가? ‘서럽고 슬픈 저녁 나라’의 멸치들이여, 그만큼 멸시를 당했으면 한번쯤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는지?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