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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52|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도종환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2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도 종 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도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노자(老子) 도덕경 50장에 ‘출생입사(出生入死)’란 구절이 나온다.
“出生入死.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 動之死地, 亦十有三.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후략). 사람들은 삶에서 나와 죽음으로 들어간다. 오래 사는 사람이 열 명중에 세 명쯤 있고, 일찍 죽는 사람도 열 명중에 세 명쯤 있다. 또한, 오래 살 수 있는데도 공연히 움직여 죽음으로 가는 사람도 열 명중에 세 명쯤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너무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생이라는 게 밤과 낮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일이라지만, 오래 살 수 있는데도 공연히 움직여 죽음으로 가는 일은 없어야겠다. 생은 집착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물며, 사랑은 더더욱!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