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0 (금)

  • 맑음동두천 23.1℃
  • 구름조금강릉 29.0℃
  • 맑음서울 23.1℃
  • 맑음대전 23.9℃
  • 맑음대구 27.4℃
  • 맑음울산 26.0℃
  • 맑음광주 24.1℃
  • 맑음부산 23.1℃
  • 맑음고창 24.4℃
  • 맑음제주 20.6℃
  • 구름조금강화 20.8℃
  • 맑음보은 24.1℃
  • 맑음금산 25.3℃
  • 맑음강진군 24.2℃
  • 맑음경주시 29.3℃
  • 맑음거제 22.4℃
기상청 제공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4|간 장|하상만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4

 

         간         장

 

                                             하상만

 

콩자반을 다 건져 먹은 반찬통을
꺼내 놓는다. 반찬통에는 아직
간장이 남아 있다.
외로울 때 간장을 먹으면 견딜 만하다.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내가 일으키려 할 때
할머니는 간장을 물에 풀어오라고 하였다
나는 들어서 알고 있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
혼자 먹던 것은 간장이었었다는 것을.

방에서 남편과 시어머니가 한 그릇의 고봉밥을
나누어 먹고 있을 때
부엌에서 할머니는 외로웠다고 했다.

물에 풀어진 간장은 뱃속을 좀 따뜻하게 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운을 주었다.
할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달라고 한 음식은
바로 간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는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었다.
수년째 자식들은 찾아오지 않던 그 방
한 구석엔 검은 얼룩을 가진 그릇이 놓여 있었다.

내가 간장을 가지러 간 사이 할머니는
영혼을 놓아버렸다. 물에 떨어진 간장 한 방울이
물속으로 아스라이 번져 가듯
집안은 잠시 검은 빛깔로 변했다.

비로소 나는 할머니의 영혼이 간장 빛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할머니의 손자이므로 간장이 입에 맞았다.
혼자 식사를 해야 했으므로
나는 간장만 남은 반찬통을 꺼내 놓았다.



나도 가끔 숟가락으로 간장(죽염으로 담근)을 퍼 먹을 때가 있다. 하상만 시인처럼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는 아니고, 감기가 올 것 같다거나 목이 부어오를 기미가 보일 때이다. 간장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거니와 정신 또한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간장을 무슨 약처럼 먹느냐고?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 좋은 음식은 약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질 않았던가. 간장은 ‘견딤’의 미학이다. 오래 묵을수록 그 맛이 깊고 맑으니, 우리가 그보다 사려 깊지 못하고 영혼이 맑지 못함을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의 맛, 오늘은 그 맑고 외로운 간장 맛을 약지에 묻혀 혀끝에 대고 싶은 날이다. 한 잔 술과 함께.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