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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59|태업의 강도|백상웅

 

울림을 주는 시 - 59

 

태업의 강도

                                             백상웅


나는 오늘 태업하오.
볼펜만 돌리며 껌을 씹겠소.
밥을 축내다가 변기에 앉을 때,
힘은 그 때 쓰고 되도록 멍해지겠소.
화분에 심은 벚나무는 그러다가 죽었소.
근육의 긴장을 풀어서 꽃피지 않았단 말이오.
비명횡사한 나무가 불쌍해 보여도,
나는 의자와 한 몸이 되어 의자에 물들라오.
학연, 지연, 혈연 모두 동원하여
조금은 딱딱해도 의자와 붙어먹겠소.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날, 조직이 낡아가고
동네가 부러지고 가문이 주저앉아서
다리 밑에 버려져도 꿋꿋하게 버티겠소.
월급은 꼬박꼬박 받아 챙길 것이오.
나도 꽃 피는 법은 배워야지 않겠소.
아침부터 저녁까지 쥐 죽은 듯이 있을 것이오.
그러다가 순식간에 죽어도 나는 모르오.
나는 의자니까, 몸이 굳어 있어도 오늘은 태업하오.



태업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물의 꿈이다. 빨리, 좀 더 빨리 자라고 좀 더 크게 거두어들이는 것만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는 신자유시대의 자본 교두보 대한민국에서 태업은 돈 없는 모든 사물의 꿈이다. 백상웅 시인은 젊다. 생의 태업을 꿈꾸는, 룸펜 같기도 한 그는 전도유망하다. 적어도 시에 대한 자세만 놓고 볼 때는 그러하다. 생활의 앞길은 모르겠고. 태업을 꿈꾸는 것마저 불온하게 여겨지는 시대, 시인이 필요한 이유를 백상웅의 시에서 보았다면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