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0 (금)

  • 맑음동두천 22.6℃
  • 맑음강릉 27.9℃
  • 맑음서울 22.3℃
  • 맑음대전 23.5℃
  • 맑음대구 25.9℃
  • 맑음울산 24.8℃
  • 맑음광주 23.9℃
  • 맑음부산 22.7℃
  • 맑음고창 23.3℃
  • 맑음제주 20.3℃
  • 맑음강화 20.1℃
  • 맑음보은 22.6℃
  • 맑음금산 25.0℃
  • 맑음강진군 23.4℃
  • 맑음경주시 28.3℃
  • 맑음거제 22.2℃
기상청 제공

딸들의 저녁식사

울림을 주는 시

울림을 주는 한 편의 시-118

딸들의 저녁식사


신달자


우리들은 둘러 앉아
옛날의 젊은 엄마들을 반찬으로
저녁을 씹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엄마가 다르지만
엄마가 겪은 상처와 치욕은 다 같았으므로
서로 “그 엄마”로 불렀다

우리들은 한 남자를 모두 아버지라 부르지만
한때 그 엄마들이 손톱 끝을 세우며 진저리치며
그리워하던 그 남자의 같은 피를 받았다

그 남자 하나를 온전히 가지지 못해 발광의 가슴을 뜯으며
허기로 혀를 물었던
우리들의 그 엄마들은
천국에서는 어떻게 살까

딸들이 와르르 웃으며 눈물을 찍어 낸다
저녁이 저물고
고기를 씹던 딸 하나가
“우리 엄마 내 딸로 태어나면 남자 하나 얻어줄 텐데”
그 말 잇속에 끼어 너풀거리고

새벽까지 한 남자를 기다리던 엄마의 늙은 딸들이 모여 앉아
가장 잔혹하고 슬픈 남자 하나
우리들의 아버지를 미워하지 앉기로 결정한다
취중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갈비 10인분 소주 다섯 병을 비우고
남자 하나에 비루하게 생을 마감한 그 엄마들의 딸들이
자신들의 딸들에게 외할머니는
유관순이었다고 신사임당이었다고
그렇게 말하자고 중의를 모았다

엄마가 다르나 어딘가 비슷한 딸들이 와장창 웃을 때
어머나! 젊은 그 엄마들이 모두 치마를 벗은 채
우리들 옆으로 앉는 모습이 보였다 사라졌다











배가 다른 자매들 마주 앉아 저녁밥을 먹는다. 이제는 죽은 어미보다 더 늙어버린 딸들이 모여 ‘그 엄마’들이 온전히 가질 수 없었던 아비를 용서하기로 한다. 예전엔 그리 보기 드문 일도 아니었으나 겉으로 처지를 드러내놓고 말할 형편도 아니어서 다들 가슴에 돌멩이 하나씩 얹어 놓고 살다 갔으리라. 그래도 세월이 지나고나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어머니 아버지 왜 날 낳으셨나요, 원망보다는 벌처럼 꽃을 오가던 아비를 미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니 말이다(결심이 아닌 결정이지만). 아비들이 집 밖에서 깃들던 여자 역시 누군가의 딸이요, 누군가의 어미가 아니던가.
지금은 용서와 화해가 필요한 때이다. 승자독식의 논리로 절반의 국민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137명의 작가들 입에 재갈을 물릴 것이 아니라 거리와 철탑 위의 낙담한 자들에게 함께 가자 손 내밀어 주어야 한다. 모든 여자를 가졌던 한 남자도 용서받는 시절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들을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