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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조문

울림을 주는 시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19

바람 조문


이서화


한적한 국도변에 弔花가 떨어져 있다
내막을 모르는 죽음의 뒤끝처럼
누워있는 화환의 사인은
어느 급정거이거나 기우뚱 기울어진 길의 이유겠지만
국화꽃들은 이미 시들어 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들이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잡풀 속
며칠 누워있었을 화환
삼일동안 조문을 마치고도 아직 싱싱한 꽃송이들
잡풀 속 어딘가에 죽어 있을
야생의 목숨들 위해
스스로 이쯤에서 떨어진 것은 아닐까
같이 짓물러가자고 같이 말라가자고 누워있는 화환
보낸 이의 이름도 사라지고
꽃술 같은 근조(謹弔) 글자만 남아 시들어 간다

길섶의 바랭이 강아지풀
기름진 밭에서 밀려난 씨앗들이 누렇게 말라간다
누군가 건드리면 그 틈에 와락 쏟아놓는 눈물처럼
울음이 빠져나간 뒤끝은 늘 건조하다
지금쯤 어느 지병의 망자도 분주했던 며칠의 축제에서
한 숨 돌리고 있을 것 같다

먼지들이 덮여 있는 화환 위로
뒤늦은 풀씨들이 떨어진다
밟으면 바스락거릴 슬픔도 없이 흘러가는 국도변
가끔 망자와 먼 인연이었다는 듯
화환 근처에 뒤늦게 찾아와 우는 바람소리만 들린다


당신은 당신을 에워싸고 있는 것들, 가령 바람, 피부, 숲, 죽음, 세포, 불안……그리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얼마간 당신을 둘러싸고 떠드는 또 다른 인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바람은 내 몸 속까지 불어가는 건지, 피부의 두께와 세포의 수와 혈관의 길이는 얼마나 되는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죽음과 그로 인한 불안은 우리의 영혼에 독이 되는가 득이 되는가. 제 몸조차 들여다보지 않고 우주를 이야기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죽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하물며 땅바닥에 떨어진 씨앗을 들여다보지 않고 어찌 생사를 말하겠는가. 오면 오고 가면 가는 게 생인 건 맞다. 아무리 바쁘다고 오늘 저녁엔 가엾고 기특한 우리 몸을 한 번 들여다보자. 보이면 보이는 대로, 안 보이면 거울이라도 빌리면 되는 일이다. 그나마 뒤태는 볼 수 도 읽을 수도 없으니, 요령부득이겠지만. ‘누군가 건드리면 그 틈에 와락 쏟아놓는 눈물처럼’ 때를 놓치면 당신은 울 수도 없을지 모른다. 조문 가서 망자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몇 초지간이 죽은 사람의 일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너무 긴 시간 동안 우리 몸과 영혼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