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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자유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24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24


골목의 자유

김유석


황망히 뛰지 말 것, 실밥처럼 드르륵 뜯겨질 수 있으므로

모퉁이와 모퉁이를 누벼 만든
오래 입은 옷 같은 협궤
설거나 곰곰이 두리번거리지 말 것

튀밥 냄새 나는,
모든 것들을 조금 부풀어 보이게 하는 하오
수선집 재봉틀 소리가
내리막처럼 보이는 오르막 도깨비 길목을 밟아가는
네 시 방향으로부터 그늘이 지는 도시의 막후에서

함부로 침 뱉지 말 것, 내 그림자에 떨어질 수 있으므로

뫼비우스의 띠일 뿐인 생의 담벼락에
낙서를 하거나
오줌을 갈겨 본 적 있다면
동전처럼 불쑥 뛰쳐 구르는
노는 아이들 소리에 놀라지 말 것

내일 때문에 늙어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므로

밤에만 문을 여는 만화점 모퉁이, 혹은
문득 막다랐다 싶은 집 앞
결코 앞서는 법 없이 바래다주는 불손한 기척들

헛기침으로 딱 한 번 돌아다볼 것


골목은 혈관, 피톨인 우리들은 골목을 돌고 돌며 살아간다. 아침마다 출근 시간에 쫓겨 골목을 내달리는 피톨들, 하루 종일 혈관을 돌고 돌아 저녁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온다. 밥이 익고 찌개가 끓기도 하지만, 가끔 밥그릇이 날아다니고 상다리가 부러져 밥상이 주저앉기도 하는 우리들의 집구석. 구석구석 피가 돌지 않으면 몸은 썩게 되고, 골목이 막히면 우리의 생도 막힌다. 골목은 모세혈관, 서로를 이어주는 작은 핏줄이다. 또한 골목은 말초신경이다. 왜 우리들의 용기는 낮에는 집을 비우고 사라졌다가 밤만 되면 불을 끄고 슬며시 일어서는가.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