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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울림을 주는 시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26


그날 이후


조인선


선거가 끝나자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래도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거기에다 웃으며 방울들을 달았다
드라마 속 사랑은 여전히 돈지랄이었고 걸그룹의 자태는 아슬아슬하게 매혹적이었다
뉴스는 사람들이 몰라도 될 것들만 보여주었고
오늘의 날씨는 어제보다 몸매가 육감적이었다
내가 지지한 대선후보는 생각난 듯이 죽은 자에게 엎드렸고
종말론은 인기 있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기에 충분히 절망적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프라이팬에 계란을 깬다
자세히 보니 핏줄이 보인다
날개가
하늘이 보인다
못다 한 꿈이 보인다
나는 조금은 아무렇지 않게
내 손바닥처럼 뒤집는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보인다
주름이 보이고
굳어진 사랑 속에

옹알거리는 태아 적 고단한 생도 보인다
나는 간신히 접시에 담는다
그렇게 한입 베어 먹듯 시를 적으니
생각하며 산다는 거
싸운다는 거 그게 무섭다
손끝이 두렵다

모든 생명이 오고 가는 부엌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내가 끌고 가는 나의 역사에도 찬란한 빛이 있어
계란 프라이 하나만도 못한 내 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그래도 그 빛에 설익은 것 같아 나오는 건
노른자의 흔적처럼 한 방울이었다
못다 한 신음 한 조각이었다


















모든 생명은 단 한 방울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신도 나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단 한 방울의 정(精)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죽음 또한 처음의 그 단 한 방울이 되는 것. 아무리 냉혈한 일지라도 단 한 방울의 눈물을 모르진 않을 것이며, 그 모든 혁명도 단 한 방울의 피(血)로부터 비롯되었느니 우리는 모두 거대한 한 방울들. 지구라는 한 방울을 이루는 작은 방울들. 한 방울의 계란, 한 방울의 당신, 한 방울의 참기름, 한 방울의 투표, 한 방울의 나…… 지구는 방울방울.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