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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뼈를 만지다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27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27


복사뼈를 만지다


박수현


난데없이 부어 오른 왼쪽 발목의 복숭씨가
복숭아처럼 발그레 익었다
의사는 벌써 몇 번째 주사기로 물을 빼낸다
복숭아, 나직이 중얼거리기만 해도
분홍빛에 오금 저려 덜컥 물러지던
솜털 보송보송한 때를 기억하고 싶어
사람들은 복사뼈를 복숭씨라 부르는 것일까

모자라거나 넘친 마음들은 가지를 떠나는 걸까
비온 뒤 단맛 빠진 낙과를 광주리에 주워 담던
여자의 물크러진 한나절에는
쪼글쪼글 벌레들이 하얗게 오글거렸다
그런 밤이면 원두막 시렁에 얹힌 달빛도
연분홍, 진분홍으로 짓물러졌다

과육 반점이 부풀어 오른다
꿈틀대는 씨앗을 쪼개 벌레를 끄집어낸다
꺼이꺼이 발목께에서 펌프질하는 복숭씨여
한 바가지 마중물이 퍼 올린 복숭앗빛에
여자는 두 발을 이리저리 포갠다


수밀도(水蜜桃)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잘 익은 복숭아 같은, 마음 속 첫사랑만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던 사춘기였을 겁니다. 너무 설익은 복숭아는 퍼렇거니와 딱딱하고, 너무 익은 복숭아는 짓물러 썩어버리지요. 딱 그 중간인, 분홍빛 살갗과 단물이 뚝뚝 흐를 것만 같은 복숭아 같은 첫사랑의 여자가 사춘기의 어느 시점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그녀를 길 위에서 만났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붉게 익어버렸습니다. 물속에 들어가 숨을 참다가 물 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그동안 참았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터져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