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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도 지지 않고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28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은 없고
결코 성내지 않으며
언제나 조용히 웃는다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약간의 야채를 먹으며
모든 일에 있어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며
그리고 잊지 않으며
들판 솔 숲 그늘의
조그마한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면서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간호해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져주고
남쪽에 죽어 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 말라 일러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부질없으니 그만 두라 말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고
추위 닥친 여름엔 허둥지둥 걸으며
모두에게 멍청이라 불리고
칭찬도 받지 않고
부담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당신에게 묻는다. 가장 최근 ‘무엇이 당신을 힘들게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언제인가? 가장 최근 ‘무엇이 나를 슬프고 힘들게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반문한 것은 어제 저녁이었다. 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읽고 그런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세계와의 소통이 부족한 나 자신이었다. 타인의 아픔에 눈을 감고 어찌 나의 슬픔이 반으로 나눠지길 바라겠는가. 신라 말 경문왕이 왕이 되고 난 뒤 갑자기 귀가 당나귀 귀가 되었는데, 이 사실을 아는 이는 왕의 두건을 만드는 복두장(幞頭匠)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죽기 전에야 대나무 숲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쳤다. 천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우리는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혹시 경문왕만 혼자 제 귀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귓바퀴 안쪽 아래가 둥글게 패여 있는 것은 타인의 이야기를 그곳에 담아 들으라는 이유는 아닐까. 즉, 귀담아 들으라는 말의 어원과도 연관이 있는 것이다. 소통은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느니, 정치권이든 남북이든 부모 자식 간이든 형제지간이든 제발 소통 좀 하고 살자.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