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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긴 아깝고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34

버리긴 아깝고

박철


일면식이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을 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품에 안은
그런 눈빛을 주고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시집 한 권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이 땅에서 시인으로 살아갈 작정을 한 자라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시집을 출간하면 다른가? 또 여기저기 곡진하게 감사의 글을 적어 보내주어야 한다. 갑을 관계? 멀리서 찾을 것 없다. 등단 십 수 년에 시집 몇 권에 내로라하는 문학상까지 받은 시인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이름조차 보이지 않는 문단 말석의 시인들을 말해 무엇 하랴. 그래, 식당 아줌마가 유명 평론가보다 맛있게 시를 읽었을 터, 시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것이기에. 시인도 시집을 버리긴 아깝고 아줌마도 아귀찜을 버리긴 아까웠으니, 둘 다 가슴 밑바닥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잊고 지내던 뜨거움을 확, 불살라버려도 좋지 않을까? 나이 사오십 넘어 누구에게 줄 수도 없고, 어차피 버리긴 아깝고…….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