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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둘치킨

울림을 주는 한 편의 시-138

둘둘치킨


조동범


명동 둘둘치킨 앞에서 애인을 기다린다.
튀김닭 냄새가 자신의 영역을 그리는 둘둘치킨,
앞으로 퇴근하는 사람들 지나간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유리 너머의 닭을 바라본다.
오지 않는 애인.
튀김옷을 둘둘 말아 입은 닭들의 천국 안에는
몇 개의 만남과 사소한 시비,
닭들의 죽음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서로 넘나드는 일도 없이.
경계는 늘 견고하다.
오지 않는 애인.
둘둘치킨의 네온이 켜진다.
닭들이 분주히 기름으로 들어간다.
몸 안의 수분이 빠져나가기 전에
경쾌하게 튀겨지는 닭,
오지 않는 애인.
나는 둘둘의 경계 밖에서 시계를 본다.
뜨겁게 펼쳐지는 닭들의 천국 둘둘.
그곳으로 한 무리의 양복이 들어간다.
둘둘치킨 안에서 간간이 즐거운 폭죽이 터진다.
나는 둘둘의 경계 밖에 있다.
몇 개의 만남의 사소한 시비,
닭들의 죽음으로부터
비껴 있다.
오지 않는 애인,
을 기다린다.
둘둘 돌아가는 닭들의 천국,
지루한 닭들의 장례 앞에서.


도대체 매일매일 얼마나 많은 닭이 죽어가고 있는 거지? 동네마다 각양각색의 치킨집이 마치 양계장의 케이지처럼 들어앉아 있고, 우리들은 모이를 쪼는 닭들처럼 저녁마다 치킨집 마당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닭의 다리와 날갯죽지를 물어뜯으며 거품 가득한 생맥주를 게걸스럽게 들이키고 있지. 그게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지 참 오래야. 그 많은 닭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떻게 자라는 것인지, 우린 관심 없고 그저 닭의 맛있는 부위를 골라 먹을 뿐이야.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저 닭들과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인다는 거지. 당신은 오늘, 끊임없이 돌아가는 시간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는지? 혹은, 폭신한 의자 위에 앉아 몇 개의 알을 품으셨는지?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