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0 (금)

  • 구름많음동두천 19.6℃
  • 맑음강릉 27.3℃
  • 구름조금서울 20.5℃
  • 맑음대전 21.2℃
  • 맑음대구 22.6℃
  • 맑음울산 24.3℃
  • 맑음광주 21.9℃
  • 맑음부산 22.8℃
  • 맑음고창 20.7℃
  • 맑음제주 19.2℃
  • 구름조금강화 18.4℃
  • 맑음보은 19.1℃
  • 맑음금산 21.5℃
  • 맑음강진군 21.1℃
  • 맑음경주시 24.8℃
  • 맑음거제 22.7℃
기상청 제공

종양의 맛

울림을 주는 시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39

종양의 맛

권민경


거대한 물혹과 한쪽 난소를 떼어낸 후
고기를 먹을 때면 뒤적거렸어
동물의 아픈 부분을 씹을까 조심스러워
그게 내 몸 같아서

암센터 건너 늘어선 주택
큰 개 순하게 매여 있네
짖을 타이밍을 잊은 개는
긴 혀를 빼물고 헐떡인다
너의 몸 어디선가 고요하게
자라고 있을 거야

나는 혹부리 여자
계절마다 새로운 혹이 돋고
모르는 새 유행에 민감해졌네
환자복 입고 딸기향 립글로스를 발랐지
향기는 소독되고
주택가를 떠도는 애드벌룬
종양은 부푼다

사람들이 태아를 걱정할 무렵
나는 세상의 작은 혹들이 애틋했네
그런 처녀였지
종양을 잉태한 줄 모르고
손자는 먼 훗날의 이야기

주렁주렁 열린 감자 겨울을 나고 좋은 씨감자 될 거야
품질이 좋고 맛 좋아

퇴원을 축하하며
엄마는 오랫동안 고기를 삶았지
들통을 열어보면 작은 종양을 달고
열심히 꼴을 먹던 소가 떠올라
나는 오랫동안 접시를 뒤적이고




종양 역시 내 몸의 세포가 일부 변형되어 생긴 것이므로 그 역시 내 육신인 것인데, 요즘 들어 할 수 없이 잘라내야 하는 경우가 몇 사람 중 한 명 꼴이란다. 갑자기 우리 몸에 매달리기 시작한 그 많은 종양들은 다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다국적 제약회사나 의료자본들이 물혹을 몸속에 매달았을 리는 없을 테고, 그것이 유전이라면 아주 오래 전부터 종양을 물려받았다는 이야기인데 하필 왜 내 대(代)에서 몸속에 부풀어 오른 것인가. 어쩌면 인체,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종양인 거지. 인간들 하는 짓들을 봐, 어린 소녀를 겁탈한 후 잔인하게 죽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내에겐 온갖 피고름으로 가득 찬 머리통 그 자체가 종양이지. 떼어내어야 해. 어차피 ‘손자는 먼 훗날의 이야기’이거나 있을 수 없는 우리의 미래일 뿐인 것이므로.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