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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불판

울림을 주는 시 140

완벽한 불판


이금란


친절하게 고기가 익어갈 때 우리는 젓가락으로 침묵을 만지작거렸네

눈에 까만 연기가 들어온다
연기와 연기와 연기가

불판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읽지 않은 책으로 쌓여가고
젓가락은 여전히 빈 페이지를 넘기고 있네

모든 오해는 시간을 까맣게 태우고 있지

핏방울이 떨어지는 불판 위
고뇌와 고통의 무늬가 다른 사람의 얼굴로 오는 저녁
드디어 골목이 어두워지고
늙은 거리의 누추한 냄새처럼 그곳에 도착했네

맨살을 뒤적이는 손가락은 하나씩 잘려 나가고 있다

어둠이 불빛에 데이듯 시간의 속살을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그들은 영원히 익지 않을 젓가락으로 앉아있네

불 안의 나는 고기처럼 뜨겁고
불 밖의 그들은 서늘해
안과 밖은 다른 나라의 골목으로 여기서 멀어지네

불판은 까맣게 타고 있는데
내 얼굴은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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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기를 구우며 늙어간다.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해 고기를 뒤집으며 능력을 점검한다. 숯처럼, 불이 잘 붙지 않는 중년을 겨우 불사르며, 젓가락 같이 말라간다. 끓는 고기를 앞에 두고..

박후기 시인